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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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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 응원가 NO.1

해방 이듬해인 46년 봄 운동대회를 맞아 학교 운동선수들이 우리말 응원가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일제시 부산진 청년회의 노래 가사를 바꾸고(일설에는 '올 부산' 응원가) 미국의 '딕시랜드'곡의 중간 부문의 일부를 뽑아 부르기 좋게 편곡하여 만들었다.

가사는 당시 학교 강당에서 이동근(23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이지구(23회)는 이에 맞추어 반주하면서, 이동근이 즉석에서 학생들에게 물어 가면서 한 줄 한 줄 가사를 만든 것이 오늘날의 응원가 No. 1이다.

응원가 No. 1은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졸업식등 큰 행사가 끝난 후에는 꼭 부르며 동고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 응원가 NO.1

태백산과 동해수의 젊은 정기 / 망월대에 모인 세기의 왕자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 붉은 피는 이 가슴에 불타고 / 의기 충천 우리 용사 잘 한다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 아 동고 넋에 당할자 / 그 누구냐 랄라라 랄라라

힘쓰자 우리 동고 백전 백승 야!

● 응원가 NO.2

응원가 No. 1 하나만으로 운동 경기장에서 계속 부르기에는 너무 단조로와 47년 말에 응원가 No. 2가 제작되었다. 작사는 당시 국어과 교사였던 박차갑이 만들었으며 작곡은 동래 여중 교사이면서 동중의 강사였던 최일환이 맡았다. 응원가 No. 2는 응원가 No. 1 보다 다소 부드러운 것이기 때문에 주로 운동 경기가 끝난 후 승리를 축하하는 뜻으로 불려졌다.

⊙ 응원가 NO.2

금정산의 수려봉은 왕자의 기세 / 해운대의 푸른 물결 왕장의 기풍

망월대 낀 안개 라라라라 동고 / 라라라라 동고 빅토리

내 가슴 정의에 불타도다 /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동고야

아름다운 우리 동고 / 플레이 플레이 플레이

● 응원가 NO.3

원명은 운동가라고 하나 흔히 응원가 No. 2라고 하는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작사는 국어 교사였던 이주홍 작곡은 당시 학생이었던 이지구(23회)가 맡아 제작하였다. 응원가중 유일하게 학생이 작곡한 곡이다.

⊙ 응원가 NO.3

머흘거리는 구름떼 / 우지짖는 새 무리

온 누리에 가득찬 기쁨의 물결 속에서 / 용사야 용사야 하늘 끝 닿도록 뛰어라

산도 물도 모두 다 우리들 청춘에 활무대 / 라라라라 라라라라

● 월령가

일본 고교생이 부르던 민요조의 수지가(數之歌)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50년도의 재학생(27회) 문예부원들이 망월대의 전등사에서 문예지 편집중에 뜻을 모아 갓는 김정한(27회) 이정기(27회)등이 만든 것이다. 그 후 청마 유치환이 가사를 일부 수정하여 오늘날까지 월령가라는 이름으로 애창되고 있다.

⊙ 월령가

정월이라네 정의에 불타는 동고 건아야 / 행진곡 높이 불며 약동하여라 / 어와 즐거웁구나

2월이라네 이팔청춘 견줄 것 없다 / 이 세상 겁날 것이 그 무어냐 / 어와 즐거웁고나

3월이라네 삼오야 오랜 밤을 피 흘린 보람 / 망월대 정기 받은 동고의 기상 / 이와 즐거웁고나

4월이라네 사기를 북돋우는 운동 경기에 / 연전 연승 그이름은 천하의 동고 / 어와 즐거웁고나

5월이라네 오륙도 뱃놀이가 동고 건아야 / 백합꽃 붉게 피는 자유의 학원 / 어와 즐거웁고나

6월이라네 유구히 빛나는 동고의 전통 / 다듬고 닦고 갈아 더욱 빛내자 / 어와 즐거웁고나

7월이라네 7월달 하기방학 닥쳐오면은 / 리-베 손목잡고 해수욕가자 / 어와 즐거웁고나

8월이라네 팔 다리 샘솟는 열정의 기백 / 정의가 아니면 스트라이크다 / 어와 즐거웁고나

9월이라네 구슬픈 낙엽 소리 인생의 공허 / 눈물 속 잃어버린 무상의 글발 / 어와 즐거웁고나

10월이라네 시집을 보내려면 동고 건아야 / 김삿갓 아니 되면 일국 대통령 / 어와 즐거웁고나

동짓달이라네 동짓날 한 허리에 사군의 진이 / 이 도령 기다리는 옥중의 춘향 / 어와 즐거웁고나

섣달이라네 설음이 닥칠 때도 굽히지 말고 / 나가자 나아가자 너도 또 나도 / 어와 즐거웁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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