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7일.

부산출장을 다녀와야 해서 겨울비 내리는 초겨울아침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문득, 88년 겨울…….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도서관에서 친한 친구 상우와 눈이 딱 맞았습니다.

'우리 기차여행 갈까?' 하여 동래역에서 오후 1시 9분에 출발하여 울산역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동해남부선 비둘기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교통편이 동해남부의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시골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 채소와 해산물을 보따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갑니다.

동래역, 부산진역 역전에 보따리를 풀고 가져오신 먹을거리들을 팔던 할머니의 눈매가 선합니다.

세상사는 이야기로 떠들썩한-따스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비둘기호 안에서 그들만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보면서 우리의 입시의 고민거리도 잠시 잊었습니다.

그때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왕복기차표, 자판기커피, 라면은 충분히 사먹었습니다.

뒤로 멀어져 가는 철로와 가까워오는 먼 풍경들을 보며, 차창에 기대어 어설픈 유행가도 불렀습니다.

울산역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덕하역에 잠시 내려 어두워지는 초겨울 들판에서 많은 생각을 하곤 다시 부산진역으로 향하는 비둘기호에 올라탔습니다.

제법 깜깜해진 해운대역에서 내려 해수욕장의 밤바다의 정취도 느끼고, 가출 아닌 가출(?)을 했던 친구와의 기차여행이 떠오릅니다. 물론 집에 가서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돌아온 착한학생(?)처럼 말입니다.

KTX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 여백에 딴 생각을 적다보니 벌써 대전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짧은 생각을 하는 동안 KTX는 긴 거리를 달려 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