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따라 물 따라

30명의 선남선녀들을 태운 인력거가 하루 동안 산하를 돌며 남겨 논 발자취를 기억이

살아 있을 때 남겨보고자 붓을 들어 보았습니다.

천등산 박달재

인근의 지(地)등산, 인(人)등산과 함께 천(天) 지(地) 인(人)을 모두 갖춘 합일정신이

깃든 신령스러운 이 곳.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으로 이등령으로 불리는

이곳은 또한 고려 고종(1217년)때 쳐들어 온 거란의 10만 대군을 김취려 장군이 물리쳐

전공을 세운 전승지이기도 하다. 고갯마루에는 말을 탄 장군의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고개에 서려있는 전설이 우리에겐 더욱

실감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과거보러 떠난 박달을 기다리다 가슴이 타서 죽은 금봉낭자

과거에 낙방하고 풀이 죽어 돌아 온 박달이 금봉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정신없이 고갯길을

헤매다 숨을 거둔 박달도령 두 젊은이의 슬픈 얘기가 얽혀있는 박달재.

이른 아침 출발하여 들른 곳이 어찌 애처로운 곳부터 발을 딛게 되는지...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제천 의림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때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고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저수지

조선 세종때와 세조때 관찰사인 정인지가 보수를 하고 근대에 들어와서도 오랜 기간

크게 보수를 한 저수지이다. 어쨌든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수리

시설로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눈으로 보니 작게만 보인다.

내 마음이 작아서일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1981. 1 성철 종정이 취임식에서 한 법어로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산지시산(山只是山)  수지시수(水只是水) !   송나라 임제종 황룡파의 청원 유신선사가 설한 법어이다.

이 늙은이가 30년전 참선을 하지 않았을 때는 산을 보면 곧 산이었다 (山是山)

선리를 조금 깨쳐 눈이 열리니 산을 보아도 산은 아니었다 (山不是山)

이제 불법 도리를 완전히 깨닫고 나니 산은 그저 산이더라 (山只是山)

단종애사

  얕은 강너머 소나무 숲속에 단종이 유배된 작은 집이 멀리 보인다

망향탑 어린 단종이 궁궐을 보며 하나씩 쌓아 올렸다는 작은 돌탑

볼수록 가슴이 아려온다

어제시(임금이 지은 시)  단종이 직접 지은 시

마지막 글귀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아직 어린 단종의 외롭고 무서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다

단종의 무덤 장릉 옆에 서있는 어린 말과 양이 애처롭게만 보인다

여기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선양(禪讓)이라는 말이 있다.  자리를 물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  수양은 선양이라는 말의 뜻은 모르고 찬탈이라는 말의 의미만 알았을 것이다.

노나라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되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공자께서 말하기를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하며    신사군이충(臣事君以忠) 이니라“

임금은 예에 따라 신하를 부려야 하며 신하는 충심으로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그냥 지나쳐 갈 수 없어 한수 시를 바쳐 올린다

       答 御製詩

     孤 鳥 出 帝 宮

     啼 千 年 未 聞

     奉 獻 流 紅 江

     夏 來 天 欲 雪

     어제시에 답하며

궁궐에서 쫓겨난 한 마리 외로운 새

천년을 울건만 그 소린 들리지 않고

흐르는 저 붉은 강물 떠서 바치니

여름 하늘엔 눈이 오려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온달산성과 온달동굴을 관람했다.

나는 온달산성은 예전에 와서 가 보았기에 동굴을 택해 안으로 들어갔다.

키 큰 나로서는 낮은 굴을 통과하는데 꽤나 애를 먹기는 하였지만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세계,   지옥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살아있는데... 삶과 죽음은 과연 무엇일까?

법정스님의 따스한 글이 생각이 난다.

사람이 산다는게 뭘까?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중략-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게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뭉클해진다...

인자요산  지자요수 (仁者樂山 知者樂水)라!

仁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옛 말처럼

산과 물을 동시에 다 접해 봤으니 동행 길에 나선 분들 모두 仁과 知를 함께 갖춘

분들이 되시기를 빌면서......

                                                               - 無用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