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준혁(서울시의원/서초구)

퇴직한 남편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가정을 등한시 했던 남편들이 퇴직을 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보니 수십년간 ‘남편 부재(不在)’생활에 익숙했던 주부들은 이 리듬이 갑자기 깨지면서 심한 스트레스로 심리적 부적응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을 일컬어 일본의 노부오 쿠로카와박사는 1991년 ‘은퇴 남편 증후군’(RHS : Retired Husband Syndrome)으로 명명했습니다.

황혼이혼의 원산지 일본에서는 퇴직이후의 인생에 대한 별다른 준비없이 은퇴한 50∼60대 남편들을 ‘누레오찌바’ 즉 ‘젖은 낙엽’이라고 부릅니다.

구두나 몸에 붙으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퇴직 후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안 일 하나 도와주지 않는 남편을 빗댄 말로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는 쓸모없는 존재로 비아냥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쿠로카와 박사는 노년기 일본 주부의 60% 이상이 RHS에 걸려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영감시집살이와 늘어가는 황혼이혼

우리나라에서도 “황혼이혼”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퇴직한 늙은 남편은 이사가는 날 강아지라도 안고 있어야 버려지지 않고 함께 이사갈 수 있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50대 이후에는 여성성이 증대하여 자잘한 것에 대한 관심사도 다양해져 ‘남편 바가지’가 잦아지면서 ‘영감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잔소리가 아니라 ‘가장이 맥을 짚어주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전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그래도 내 세상이었는데 남편이 퇴직한 이후에는 온종일 남편 눈치보면서 일일이 챙겨줘야하니까 더욱 피곤해집니다.

특히 한국 주부들에겐 남편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면 ‘내가 나쁜 아내인가’라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더욱 복합적인 양상을 나타냅니다.

`아내’의 옛말은 `안해’입니다.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나타내는 접미사입니다. 따라서 `아내’는 `안 사람’이란 뜻이 되는 반면 남자는 `바깥사람’이 됩니다.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남편을 뜻하는 영어 husband는 house의 고어(古語)인 hus와 스칸다나비아어로 '자유롭게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닌 bondi가 합해진 말입니다. 집을 장만하고 지키는 가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길어지는 평균수명, 빨라지는 정년퇴직

통계청의 ‘2006년 이혼통계’에 따르면 55세 이상 남성의 이혼은 전년보다 7.8% 증가한 1만2,900건으로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50~54세 이혼남성(1만1,800건)도 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도 45세 이상에서만 10% 이상 이혼이 늘어났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55세 이상 이혼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3.5배, 5.1배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통계청은 2020년에는 남성 78세, 여성 84세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은 늘어만가는데 은퇴연령은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7월 19일 발표한 ‘2007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청년층, 고령층)’ 결과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은 평균 53세에 퇴직한 것으로 나타나 불과 1년새 퇴직연령이 한 살이 낮아졌습니다.

현재 55세가 2년 전 퇴직 당시 평균 기대수명이 81.2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26.2년간 직장 없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특히 정년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은 11.4%에 불과해 9명 중 8명이 휴폐업-권고사직-정리해고-명예퇴직 등으로 정년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야흐로 이제는 50대를 전후로 퇴직하지만 다시 제 2의 인생을 계획하고 준비해야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진정한 부부파트너십을...

엉터리전도사 烏石의 바램...

정부적 차원의 대책도 시급하지만 부부 역시 서로 이해하고 함께 인생을 준비해나가야 하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일찍부터 공유하는 등의 노력과 함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황혼의 위기를 미리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부 파트너쉽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