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38) FC 서울 감독대행의 '형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달 26일 황보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퇴한 뒤 최 감독대행은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3연승을 이끌었다.

벤치에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그의 모습은 큰 화제다. 지난 달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K-리그 8라운드 경기 때 수트 차림으로 비를 흠뻑 맞은 모습, 8일 상주 상무와 경기 때는 후반 막판 현영민이 결승골을 넣자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가 선수들을 얼싸안았다. 벤치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는 최용수 감독대행을 10일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리그 최종전 항저우 그린타운과 경기를 준비하는 중국 항저우 숙소에서 만났다.

-최근 3연승을 거두는 동안 벤치에서 지휘하는 장면이 아주 극적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 열정은 어디서 오나.

"선수들에겐 축구를 즐기라고 해놓고 지도자는 인상을 쓰고 있으면 안 된다. 90분 동안 왜 잘못한 것만 지적하고 1골이 나기를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는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 해 기량을 펼친다. 내게도 손과 발, 입이 있다. 나도 벤치 앞에서 내식대로 즐긴다. 소리치고 동작도 하고…."

-그래도 지난달 30일 제주와 경기에서 비를 흠뻑 맞았을 때는 무척 추워보였다. 어떻게 참았나.

"정말 추웠다. 그런데 선수들이 헌신적으로 뛰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겠나."

-그 때 입은 양복 얘기를 해보자. 팬들이 옷이 너무 크다며 '이장님 패션'이라 부르더라.

"갑자기 감독대행이 될 줄 알았나. 집에 있는 양복은 내가 지금보다 살이 쪘을 때 입던 것이다. 내 패션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부끄럽고 화도 나더라. 바로 잘 가는 양복점으로 가서 요즘 스타일로 새로 맞췄다. 항저우와 경기 때 입으려고 들고 왔다."

최 감독대행이 옷을 맞추러 달려간 곳은 강남의 이탈리아 명품점이다. 그 곳의 60대 외국인 수석 디자이너가 최 감독대행의 수트를 디자인했다.

-현재 K-리그 최연소 사령탑이면서도 여유가 대단하다.

"0-3으로 지더라도 절대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패했다고 지도자가 인상을 쓰고 있으면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없다."

-감독대행이 되면서 '선수들의 허심탄회한 얘기를 우선적으로 듣겠다'고 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나.

"그동안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고백들이 이어졌다. 축구는 단체운동이다. 헌신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긴 뒤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그리고 배려해야 한다. 이 3가지 원칙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팀 분위기가 자유롭고 밝아진 것 같다.

"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시간에 최태욱과 이규로가 볼을 주워준다. 둘 다 지난 시즌 우승의 주역이었다. 그리고 경기 때는 2군 선수까지 포함해 44명이 라커룸에 있다. 2군 선수들도 언젠가 라커룸을 써야 한다. 1군이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는지 경험하는 게 훈련 몇 번 하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최 감독대행은 매번 식사시간을 잰다. 그는 9일 저녁 식사시간이 48분이었다고 기뻐하며 말했다.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어쨌든 선수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얘기다. 48분은 내가 여기서 코치생활을 한 6년간 최장시간 기록이다."

-'이제 지도자는 절대 권위적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나.

"코치가 되면서 사회 전반의 경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축구뿐아니라 다른 분야도 수평적인 리더십이 대세다. 이제 지도자는 지식으로 선수들을 압도해야 한다. 배우지 않고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절실히 느꼈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지난 해 12월 지도자교육 최고레벨인 P코스 1차과정을 이수했다. 김태주 FC 서울 홍보팀장은 "최 감독대행이 파워포인트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수 교육시간 때 파워포인트를 즐겨 활용한다"고 전했다. 전재홍 FC 서울 주무는 "최 감독대행은 책을 많이 본다. 매 경기 준비하는 자료량도 방대하다. 선수들이 최 감독대행의 카리스마에 눌려 마지못해 따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감독대행 자리가 꽤 부담스러울텐데, 표정이 밝아보인다.

"구단 스태프의 도움이 크다. 프런트에서는 주무와 홍보팀장,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이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말이 잘 통한다. 고민 거리를 마음 속에 담아두면 다른 생각을 못 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스태프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해법을 찾기도 한다."

-구단 프런트와 아주 관계가 좋은 것 같다.

"세뇰 귀네슈 감독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감독이 할 일은 수백 가지다. 그 중 프런트와 선수단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감독의 역할 중 하나다."

-그래도 코치 때와 감독대행으로서 느끼는 부담은 천지차이 아닌가.

"최종결정자이다보니 판단할 때 무척 신중해진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나이 때 실수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대신 여러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 한다."

-감독대행이 된 뒤 달라진 게 있다면.

"아침에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구리 챔피언스파크(FC 서울 훈련장)를 구석구석 돌아본다. 1994년 신인으로 입단했을 때가 매번 떠오른다. 그러면서 초심을 다시 생각한다. 훈련장 관리원께도 인사하고 2군 선수들이 두고 간 물통도 정리한다. FC 서울에서 선수로 시작해 여기서 지도자를 하는 게 무척 행운이다."

-3연승을 달리고 있다. 이 분위기가 더 이어질 것 같은가.

"두고 보라. 우리 팀은 더 좋아질 것이다. 각 포지션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너무나 많다. 팬들이 바라는 공격적인 축구를 기대해도 좋다."

최 감독대행은 인터뷰 도중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칭찬했다.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는 딴판이다. "우리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스타의식을 더 키워야 한다. 앞으로 내가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겠다"던 그는 지난 3월의 일화를 소개했다. 문기한과 이승렬이 올림픽팀에 발탁되자 최 감독은 둘을 불러놓고 인상적인 세리머니를 생각해보라고 운을 띄웠다. 그리고는 "골을 넣고 아예 라커룸으로 들어가라. 누구도 한 적 없는 세리머니다. 기자들과 팬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라"고 조언했다.



-얘기를 종합해보면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신나는 축구를 지향하는 것 같다.

"우리 선수들에게 수비적으로 하자고 하면 욕먹는다. 공간만 있으면 파고들려고 안달이 난 선수들이다. 공격수들은 골그물과 교감하기 위해 미쳐 있다."

-그저 좋은 형님 스타일 때문에 선수들이 따르지는 않는다. 선수 시절 욕심 많고 카리스마 있고, 때로는 과격했던 기억이 선수들을 움직이는 동력 중 하나 아닌가.

"선수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훈련 중 40분은 아주 엄격하게 유지한다. 필요한 순간에는 무섭게 선수를 다그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강약조절을 더 배워야 한다."

최용수 감독대행이 2001년 일본 J-리그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현 JEF 지바)로 이적한 뒤 얼마 있지 않았을 때였다. 팀이 패했음에도 구단 버스에서 일본 동료들이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고 호통을 친 일화는 유명하다. 최용수의 강인한 인상은 지금까지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선수 시절 '독수리'라 불렸다. 이제 감독으로서 '독수리'가 될 준비가 돼 있나.

"지금은 참새도 됐다가 비둘기도 돼야 한다. 그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독수리 감독이 돼 있을 것이다."

최 감독대행은 인터뷰 도중 수시로 "말주변이 없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명쾌했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멘트는 이제 인터넷에서 '어록'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말은 그저 말일뿐이다. 그의 진짜 실력은 숫자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일간스포츠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