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육수 소믈리에'.
만약 이런 직업이 생긴다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냉면 육수를 담은 그릇을 모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며 어느 집 육수인지 알아 맞추고 맛에 대해 평을 하는...
"와우... 봉평 떼루아의 메밀향과 횡성 한우의 양짓머리 육즙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네요... 탄닌 끝맛처럼 마지막에 퍼지는 묵은 동치미의 군내도 목넘김을 가볍게 해주고요... 아, 그런데 메밀에 중국산이 절반 가량 섞인 점은 아쉽습니다"
이런 식으로 평하게 될 것 같네요... 저도 어지간히 여기저기 냉면집을 다녀봤으니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래는 제가 다녀 본 냉면집, 정확히 말하며 이북식 냉면집의 물냉면 순위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대단히 편파적인 평가이므로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저 제 입맛에 따른 순서일 뿐입니다. 어차피 블로그는 1인 개인 미디어니깐요... 쩝...
*설명 순서
<순위>- 업소명 (위치)
1. 맛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2. 특징
3. 냉면 외 맛난 음식
<1위>- 봉피양 (서울 송파구 방이동)
1. 다양한 재료의 화려한 하모니!
2. 육수에 소,돼지,닭고기가 모두 들어갑니다. 처음 맛을 봤을때, 닭뼈 혹은 닭발을 함께 끓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노계를 통째로 끓인다는 군요. 무,파,마늘,생강,간장 등 야채도 다양하게 들어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맛이 함께 조화롭게 느껴지면서도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따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재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를 추구해 '화려한 하모니'가 됩니다. 어떤 분은 '정통 평양냉면을 망쳤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저는 봉피양 육수의 맛이 '궁극의 육수'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음식도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는데 이런 식의 개량은 아주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한국 최고의 냉면이고, 전통 평양냉면의 향을 베이스로 하면서 이 이상으로 육수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그릇에 1만원이 넘는 고가이지만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동치미에 무 뿐 아니라 배추가 들어가 더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봉피양은 '벽제갈비'에서 운영하는 데, 서울 각처에 분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봉피양 냉면 개발자가 주방에 계신 방이점 냉면이 젤 낫더군요...^^)
3. 돼지갈비, 만두, 소고기양념구이, 설렁탕 등등 모든 음식이 다 맛있습니다.
<2위>-평양면옥 (서울 중구 장충동)
1. 무난한 맛…평양 옥류관과 거의 유사
2. 평양냉면의 특징인 '아무 맛 없는 맛' 혹은 '닝닝한 맛'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특별히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가장 무난한 맛입니다. 재료를 과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맛은 다 있습니다. 저는 평양 옥류관에 가본 적이 없지만 맛을 본 분들은 그래도 이 집이 옥류관과 가장 비슷하다고 하시네요. 물론 옥류관이 평양면옥의 절대 기준이란 뜻은 아닙니다. 단, 육수 맛이 날에 따라 기복이 있는 게 흠.
3. 만두
<3위>-남포면옥 (서울 중구 다동)
1. 강력한 동치미의 향!
2. 대부분의 냉면집이 고기국물을 육수의 주재료로 하고 동치미를 보조재료 처럼 쓰지만, 이 집은 반대입니다. 동치미도 군내가 팍 나는 옛날 스타일입니다. 서울냉면에 익숙한 젊은 분들을 데리고 갔다가는 '불꽃 싸다구' 맞기 딱입니다. 다만 요즘에는 젊은 사람 입맛에 맞춰 군내가 줄어들고 대신 달짝지근한 맛이 살짝 올라갔습니다. 동치미를 주재료로 쓰는 냉면집은 이제 남포면옥이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3위!!
3. 신선로 어복쟁반 (신선로)
<4위>-필동면옥 (서울 중구 필동)
1. 거친 면발의 힘!
2. 동치미를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담백하고 깔끔합니다. 이렇다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면발이 거칠고 메밀 껍질을 입술로 느낄 수 있습니다.
3. 차가운 소고기, 돼지고기 수육
<5위>-사리원면옥 (대전 중구 대흥동)
1. 대전에 이런 곳이!!
2. 개성에 가서 먹어 본 '개성국수'와 유사합니다. 전체적으로 평양면옥과도 비슷. 사리원은 황해도 해주 인근이니 남한에 거의 드문 '황해도 냉면' 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대전에 출장갔다가 우연히 발견해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다니!!"란 충격에 한번 더 놀랬습니다. 결국 다음 출장 때 한번 더 갔습니다.
3. 불고기
<6위>-우래옥 (서울 을지로4가)
1. 이게 소고기 맛!
2. 동치미를 쓰지 않고 거의 소고기 만으로 육수를 냅니다. 간장과 잘 어우러져 면과 함께 섞이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냅니다. 면발도 싱싱합니다. 식당도 거의 기업 수준이라 서비스도 좋고 깔끔합니다. 미국에도 분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3. 불고기
<7위>-을밀대 (서울 마포구 염리동)
1. 메밀향의 강한 뒤끝
2. 냉면 마니아들 사이에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죠. 몇해전 창업자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옥류관과 맛이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집입니다. 제가 먹어봐도 맛이 바뀌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고소한 고기 맛과 야채향(특히 생강)을 많이 살린 지금 맛도 나름 개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수(국수 삶은 물)를 듬뿍 넣어 메밀향을 강하게 살린 것이 예전 을밀대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 맛은 여전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을밀대에 가면 실향민 노인들이 많이 오셨는데 요즘엔 20~40대 직장인들로 바글바글 합니다. 맛이 변한 점은 서운하지만 젊은 층을 이북 냉면의 세계로 끌어들인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3. 뜨거운 소고기 수육
<8위>-을지면옥 (서울 중구 을지로3가)
1. 필동면옥과 유사
2. 필동면옥과 거의 비슷한데, 면발이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부드럽습니다. 의정부 평양면곡-필동면옥-을지면옥.. 이 세 집이 친척(혹은 사돈)관계라고 하네요.
3. 차가운 돼지고기 편육
<9위>-옥천면옥 (경기 양평 옥천면)
1. 하여간 특이한 맛!
2. 특이합니다. 물냉면이면서도 면발이 약간 질기고(고구마전분을 섞는 듯) 육수는 고기를 안 쓰고 야채와 간장만 쓴 것 같은데 다시마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평양냉면과는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독특합니다.
3. 완자
다 정리하고 나니 고작 9군데군요... 여기에 제가 아직 못 가본 의정부평양면옥을 합치면 10개가 되겠네요.. 물론 위의 9개 냉면집은 'top9'는 아닙니다. 아직 제가 가보지 못한 곳도 있을테니까요...
봉피양 냉면, 우래옥 불고기, 평양면옥 만두, 남포면옥 어복쟁반, 을밀대 수육, 필동면옥 편육... 이 메뉴가 한 집에서 모두 나온다면... 그 집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냉면집일 겁니다... <끝>
관리자 : 김성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