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고등학교재경총동창회

생물과목시간 안경너머 진지한 눈빛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강의하시던 고교

은사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미노산 복합분자로서 자기복제를 하는 것이

생명체라 설명하시고, 실험시간에 대파잎 조각을 현미경 밑에 깔아놓고 세포

조직을 관찰케 하였지요. 1953년에 제임스 왓슨이, 세포의 자기복제를 위한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의 2중나선구조을 발견함으로써 생명의 신비에 훌쩍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우리 인간은 자칭 가장 고등한 생명체로 자부하지요. 근대철학과 근대과학의

선구자 데카르트는 인체를 육체와 정신의 결합체로 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하였답니다. 먼저, 육체는 없고 정신만 가진 자신을 가정하여

상상해 봤더니, 마치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는 자신을 발견하였지요. 반대로

정신은 없고 육체만 있는 자신을 가정하여 상상해 봤더니 이번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이에 정신이 육체를 지배함을 깨달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로 깔끔히 정리하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정신이 어떻게 육체를 지배하는지를 연구하였으며, 뇌가 정신의

작용기전을 총괄하고 있음을 해부학적으로 처음 규명하였답니다.

오늘날 진일보한 의학과 첨단과학은 대략 천억개 정도 인간 뇌세포가 촘촘한

뇌신경망으로 연결돼 전자기력으로 제어되고 있음을 밝혔고, 뇌사판정이 인간

생명체의 최종사망기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금세기, 과학은 한점 에너지에 불과했던 특이점이 137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를

탄생시켰고, 그 때 생겨난 물질과 함께 우주는 에너지와 물질로 구성돼 있음을

밝혀냈지요. 바야흐로 생명에 대해서도 우주적인 차원의 물질과 에너지 관계로

접근하게 되었고, 생물과 무생물로 논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입니다.

알려진 바, 우주엔 중력, 핵력, 전자기력 같은 힘이 존재하고, 우주 기본물질로

92종류의 원소가 존재하지요. 그 중 26종 원소는 우리인체를 구성하고 있으니,

인체도 우주의 일부라는 데 이견이 없지요. 게다가 인체는 전자기력으로 작동

되는 뇌의 통제롤 받고 있으므로, 물리학자가 정의하는 생명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관장하는 물리법칙의 범주에 속하는 단순한 물리적인 현상으로

본답니다. 물리법칙이야말로 생물과 무생물 구별없이 적용되는 단순한 자연법칙

이기 때문이지요.

즉, 전자기력으로 작동되는 인간의 뇌가 수명을 다하여 멈추듯이, 전자기력으로

작동되는 컴퓨터의 CPU가 수명을 다하고 멈춰 고물이 돼버리는 것과 차이점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우주의 한 부분이며, 우주의 공통된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것이지요.

가까운 미래엔 무생물인 AI가 생명체 인간을 지배할 것이란 예측만으로도 생명에

대한 의미가 한층 더 도전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인간은 생각

하는 생명체이고, 생각하므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유일한 생명체임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야겠지요. 무엇보다, 죽고 산다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무관한

것이고, 우주를 관장하는 물리법칙 즉, 자연법칙에 따르는 현상이라는 점에 다소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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