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살던 시절에 변변한 오락거리도 하나 없고

사람들도 어수룩해서 프로레슬링이란게 진짜 피터지게 싸우는건지 짜고 치는 고스돕인지도 몰랐던 70년 대 초반

내가 기억하는 김일은 이미 머리가 많이 벗겨져 올라간 40 대의 아저씨였다.

하지만 TV를 통해 보여준 박치기 쾌감은 강렬했고 지금 젊고 잘나간다는 최홍만의 니킥이 보여주는 가공할 파괴력을 능가했다.

설사 그것이 무대 뒤에서 이미 기획된 '쇼'로서 빈곤한 인민의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독재정권의 우민화 술수라 해도 순진하고 순박했던 우리 백성들은 그 김일의 박치기를 통해 억눌렸던 울분과 독재정권의 숨구멍 역할을 해줬던 판타지로 기억한다.

역도산의 비극적 삶이 일전에 영화화 되어 화려했던 영웅의 면모을 잠시나마 되살린 적이

있으나 그에 못지않은 김일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을 뿐이다.

내가 보지 못했던 60년대 그의 활약과

프로레슬러가 되기위해 57년도에 역도산을 찾아 단신 밀항하여 일경에 잡혀

1년을 형무소 생활하고 그 뒤 역도산 캠프에서의 수련한 후 성공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다.

영화 역도산에서

잠시 비쳐줬지만 그때 역도산 휘하에서 혹독한 수련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사람들 보다 김일을 더 가혹하게 대했던 역도산의 의중은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사후에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던 김일의 행적으로 보아 필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더 진한 애정이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사자 애비가 사자 새끼를 험하게 키워

초원의 왕으로 만들듯이...

스산한 바람이 불어 낙엽을 날리니 우리 인생도 창공에 흩날리는 저 낙엽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허공에 찍어대는 새들의 무수한 날개짓과 발길질이 남음이 없는 것 처럼

인간사 수많은 다툼과 영욕도 긴 시간 속에서는 그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아 슬프도다. 인생이여. 부디 저 하늘에서 더 행복하시라. 

가을날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