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문정희 





이곳에 이르러

목숨의 우뢰소리를 듣는다.



절망해본 사람은 알리라

진실로 늙어본 이는 알고 있으리라



세상에서 제일 추운 무덤가에

허리 구부리고 피어있는

할미꽃의 둘레



이곳에 이르면

언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꽃이란 이름은 또 얼마나

슬픈 벼랑인가



할미꽃

네 자주줏빛 숨결에

태양이 가라앉는다. 





춘분이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얼었던 땅이 녹아 푸석해져가고 그틈을 비집고 

파란 새싹을 틔우는 싱싱한 생명의 계절이

발아래  피어나고 있습니다.



암자를 찾아 가노라면 양지바른 곳에 제법 수북히 

피어난 쑥들이 여심을 잡기도 합니다.

또 어릴적에는 어느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쉽게 보았던

그러나 요즘은 보기 힘든 할미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봄이 왔슴을 확인 시켜 줍니다



오늘은 양산 통도사의 암자중  통도8경을 중심으로

백운암 비로암 극락암 안양암과

자장암 서운암 취서암을 소개합니다

일부 사진은 예전에 찍었던 것들 입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와 가사가 봉안되어 있어 

삼보 사찰중 불보(佛寶) 사찰로 알려진 통도사는 

영취산 아래 자리 잡고 있고 영취산 계곡은 

절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암자들이 있다. 



영취산엔 통도사로 시작되어 계곡마다 20여 개의 

산내 암자들이 즐비해 있다. 산길 오르며 갈림길마다

암자가 숨어 있어  길이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기도 하다



 ◈ 백운암가는 길 ◈






절골이란 표현이 딱 좋게, 산문부터 영취산 정상까지 

끊이지 않는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가 몸도 마음도 

불가의 세계로 들어서게 해 주니 어찌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절골 영취산 골짜기에 즐비한 20여 개 많은 암자 중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가 백운암이다.



봄기운 완연한 극락암을 뒤로 하고 산길을 접어드니

비로암과 백운암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접어들어

한참을 오르니 파란 산죽 사이로 사잇길이  나있다









암자를 찾아가는 들머리 바위에는 백운암 500m라는 

이정표가 선명하고 이곳을 지나면 비탈이 점점 심해진다. 

하기야 산정상에 머무는 흰구름위에 자리한 암자이니 

오르는데 어찌 아니 어려울까?



 ◈ 산수유 ◈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은 온통 바위이고

급한 경사와 깔려있는 돌들이 그 험함을 더해 준다. 

쉴세없이 이어지는 비탈을 오르려니 숨이 차올라

돌탑 위로 돌하나 더 얹으며 잠시 숨고르는 사이

어느새 봄은 산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너들지대위로

백운암을 200여m 남았다는 표시가 나타난다



갈수록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바닥도 점점 험해져서

넘어지기나 미끄러지면 살을 벨듯한  뾰족한 돌들이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듯 사천왕의 

날카로운 눈빛처럼 바라보고 있다







오르고 또 올라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어디 쉴만 한 곳이 없나 두리번 거리는데 암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내려가는 사람이 발아래 있다



이 곳을 올라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법계사나 봉정암을 오를 것인가 걱정하는 순간

어디서 경읽는 소리가 들린다



 ◈ 백운암 ◈






어디 깊은 계곡에 있는 암자는 불심으로 오른다더니

들리는 은은히 염불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독경소리가 이렇게 청아할진데 8경중의 하나라는 

백운명고(白雲鳴鼓)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별도의 일주문도 현판 걸 공간마저 없어 돌담에 

걸쳐 놓은 작은 빈터에 백운암이 홀연히 나타난다



 ◈ 공양간 ◈




돌담을 들어서면 허름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건물은 원래 백운암의 대웅전이였으나

고색창연함을 그대로 전하려고 예전의 낡은 건물을 

암자 입구 작은 공간으로 옮겨 현재에는 공양간으로 쓰고 있다



 ◈ 대웅전과 삼성전 ◈






 ◈ 산신각 ◈






 ◈ 요사체 ◈






 ◈ 금수 ◈




산신각 법당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m되는 지점에 금수라는 약수가 있다.

이 물은 석간수로서 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서는 

금색 빛이 찬연해지므로 금수라고 이름 지어졌다한다

표주박에 금수를 떠서 한모금 마시니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양산벌 ◈








대웅전 앞 돌담에서 까치발하고

멀리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면

저 아래 극락암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숨어 있고

멀리 아스라이 동해안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보면 신불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간월산과 천왕봉 연능,사자평고원의 

드넓은평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백운암을 뒤로 하고 비로암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산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 비로암 ◈








비로암에서 서북쪽 약500m되는 지점에 통도사 팔경 중의 하나인 

비로폭포（毘盧瀑布가 있으며 뒷산의 우거진 송림은 산내에서 

가장 울창하며 가을이면 도토리 줍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든다



 ◈ 본당과 전각들 ◈








일주문을 들어서면 작은 자갈길이  펼쳐지고 

법당 앞에는 갖가지 수목이 절 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백운암 못지 않은 곳이다



 ◈ 비로전 ◈






 ◈ 요사체 ◈








비로암을 내려와 극락암으로 향했다. 

현대 불교사에 있어 고승(高僧) 중의 한 분이었던 

경봉스님이 머물렀던 암자다.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들이 비경을 이루면서 암자를 품고 있다



주위에는 고고한 모양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대나무들이 

항상 푸르름을 유지해 주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인가. 

바위들이 신령스럽고 엄숙하다면 이런 푸르름은 

항상 생기 발랄한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세월의 풍상을 간직한 극락암의 고풍스러운 

모습이 더없는 숙연함으로 다가온다. 



 ◈ 극락암영지 ◈




고려 1332년（고려 충혜왕 2년）에 창건된 극락암에는 

영축산의 연못이 비치는 극락영지（極樂影池）가 맞이한다． 



암자 입구의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역시 통도팔경의 하나이다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와의 조화가 일품이다.



 ◈ 법당에 핀 홍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동백 ◈














산중턱에 자리 잡은 극락암의 나무들은 매말랐던

나무가지 위로 새순 돋는 봄 축제가 한창이다

양지 바른 곳의 할미꽃과 법당 앞에 핀 홍매화

꽃잎 끝을 붉게 물들인 희귀한 흰동백

독성각을 지키는 산수유까지 겨우내 숨죽은듯

조용한 암자는 봄을 조금씩 싹튀우고 있었다







매화송(梅花頌)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여라. 



 ◈ 자장암 ◈










극락암을 내려와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1km 정도 

길을 가다보면 울창한 숲사이로  넓은 암반과

그사이를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통도사 팔경 중의 하나인 

자장동천(慈藏洞天)이 나타난다.



자장동천(慈藏洞天) 왼편에 있는 높다란 석벽 아래 암자가 하나 보이니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가 절 건립 전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했다는 자장암으로 

이곳이 바로 금개구리의 전설로도 유명하다.



법당은 4칸의 사람이 거처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이며

법당 북쪽에는 요사가 있고 그 남쪽으로는 높이 약 4m

높이의 거대한 마애불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통도사 산 내에서 유일한 마애불로 1896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 이 마애불에서 약 2m 남쪽에 자장전이 있다.



 ◈ 금와보살 ◈




법당 뒤쪽의 바위틈에서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바위벽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떠나지않아 율사께서 신통력으로

바위벽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바위 한가운데의 작은 구멍에 지금도 금와공(金蛙孔)이

살고 있어 모든 참배객들은 으례 이 자장암의 금개구리를 보고자 한다. 

암혈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로써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측량하기도 한다. 



 ◈ 안양암 ◈






자장암을 나와 서운암을 가기전 우측편 갈림길로

들어가면 안양암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안양암 입구에는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가 위치하고 있다













안양동대(安養東臺)는 안양암 입구 아름드리 노송 

옆에 쌓인 석축을 일컬으며 임진왜란때 왜구들이 

여기서 활을 쏘려다 눈앞에 보이는 경관이 

너무 빼어나 활을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여기서 앞을 보면 구불구불 휘어진 소나무와

눈을 들면  영취산이 구름속에 잠긴 듯 나타난다

지금은 철없는 동자승과 이를 미소지으며

바라보는 돌부처가 놓여 있다



 ◈ 서운암 ◈










안양암을 나와 통도사로 향하면 100m아래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지나 왼편으로 오르면  3천 개의 

금불상을 모시고 있는 서운암이 있다. 



암자라고 여기고 들른다면  많은 장독을 보게 된다．

서운암의 장맛은 전국적으로 잘알려져 있으며 또한 서운암은

암자 일대 20만평을 들꽃단지로 조성하여

2002년 부터는 들꽃축제를 벌여오고 있다． 



 ◈ 통도사 일주문 ◈






통도사에서 일주문까지의 계곡을 끼고 오르 내리는 길은

마치  노송이 춤을 추듯 어우러진 풍광을 선사한다

이를 통도팔경의 하나인 운치있는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고 한다

  

이밖에 영축산 정상 인근 단조산성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단성낙조(丹城落照),  취운암에서 들리는 저녁종소리 

취운모종(翠雲暮鐘),이 더해지면 통도팔경이 완성된다.



 ◈ 축서암 ◈






축서암은 통도사 바깥에 자리 잡고 있다

통도환타지아 정문에서 좌회전, 지산마을로 가다보면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절집의 첫 인상은 초라하고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축서암을 둘러싸고 있는 노송들의 운치는 

지나가던 발걸음도 붙잡을 만큼 인상적이다.



축서암에는 선서화로 유명한 수안스님이 계시며 

넉넉한 여백에 빨강 노랑 초록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스님의 선서화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애호가를 갖고 있다.





끝으로 수안스님의 그림과 시한편을 소개하면서

오늘 여행을 마칠까 합니다



 ◈ 수안스님 선화 ◈








차나 머금세







수안 







여보게 벗

차가 있네



차 머금으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 모든 일 즐겁게만 보인다네



몸은 娑波(사파)에 머물지만

마음이야 俗塵(속진)에 물들 수 있는가

담담한 맛이

차의 묘미라네





인생사 모두가 다 그렇듯

친한 벗 하나 둘 보이질 않고

새로운 벗 사귀자니 힘이 들고

궂은 일 좋은 일 의논하면서

山 그늘 내리는 옛동산 그리며

여보게 벗



차나 머금세











2006년 03월 19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