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입니다 

얼었던 발 밑의 땅이 녹아 부드러워지고 

그 틈을 비집고 피어난 푸르름이 산기슭을 타고 오르고

먼 남도에서는 봄을 알리는 매화축제가 시작한다는군요



이맘때 쯤이면 마음은 남도에 가있습니다

매화가 지면 산수유 그다음 벛꽃이 만개할테고

보성 녹차밭의 싱그로움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보지 않고는 못견딜 참을 수 없는 유혹입니다.



12일 일요일 구례에서 들려오는 매화 구경을 겸해 사성암을

다녀 오려하였으나 황사 소식에 가까운 영천 은해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은해사는 불, 보살, 나한 등이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새벽을 달려 일주문에 들어서니  수백년 묵은 소나무들이 

오백 나한이  사찰을 호위 하며 근엄하게 서있고 

그 사이로 난 길을  오르면 왼편 바위를 병풍 삼아 

크고 작은 부도들이 은해사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듯 사이좋게 늘어 서 있다.

열반에 든 고승에게 예를 올리고 절로 향하면

새로 만든 은해교 다리 앞에 오래전 세워진 하마비가 

왠지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은해사 보화루가 나타나나 

오늘은 어머니 품속 같이 부드러운 산세에 숨어 있는 조용한 백흥암과

은해사 정수리에 붙어 있는 중암암(돌구멍 절), 

몸과 마음이 구름 위의 선녀처럼 수행 정진하라는 운부암과 

은해사 본사를 참배하고 마지막으로 은해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생의 수행원력이 가득하여 성불을 이룬 500나한 도량인 거조암을

둘러볼 예정이다.  



 ◈ 백흥암 ◈












울창하고 멋지게 휘어진 소나무들이 유명한 은해사 진입로를 지나  

한적한 길을 조금 오르면  저수지가 나오고, 

왼쪽으로 오르면 백흥암 오른쪽으로 가면 운부암이다



백흥암은 한때 수백 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冥府殿)

·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 등이 있다.  

백흥암에는 보물 제790호  극락전(極樂殿)과  

보물 제486호 극락전 수미단(須彌壇)이 있다.





백흥암은 여늬 절집들과는 달리 초파일과 백중날만 개방하고, 

경내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자세히 살펴 보지는 못했으나

밖에서 살펴 보는 것 만으로도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여서 그런지

맑고 깨끗한 물에 비친 달과 같이 화려하지도 않으며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수수하고  정갈한 암자이다







백흥암을 나서 산위로 올라가면  한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 내려

산을 오르는 수고를 잠시 식혀 주었을 높이가 20m 쯤은 되어 보이는 

폭포가 얼어 붙어있다



 ◈ 중암암 ◈






백흥암을 지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자리잡은 곳이 중암암이다. 일명 돌구멍 절이라 불리는 

중암암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이다. 

세 살 먹은 어린이가 흔들어도 흔들린다는 건들바위, 

만년을 살았다는 만년송, 우리나라 제일 깊다는 해우소, 

이런 것들이 유명하며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 역시 자랑이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돌로 쌓은 작은 문 하나가 일주문이다 











커다란 바위 틈 사이에 난 사람 키 높이의 구멍을 

지나면  바로 눈앞에 법당하나와 요사체가 나타난다.

낭떠러지 위에 제비집처럼 자리잡고 있어 모든게 작고 앙증 맞다.

대여섯 걸음 걸으면 끝인 법당과 사람하나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마당에는 허리높이도 안되는 담이 있어 허공과 땅을 경계한다 

 

 ◈ 해우소 ◈






법당 오른편에 작은 요사체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앞 바위 틈새에는 서서는 들어 갈수 없는 높이 1미터 남짓한

작은 해우소가 천길 낭떠러지 위에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암암 해우소의 깊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옛날에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이곳 돌구멍 절에서 수행을 하고 계시던 

세 분의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절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통도사에 계시는 스님.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1말 3되나 떨어진다\"고 하며 

은근히 절의 규모를 법당 문 크기에 빗대어 자랑을 하셨다. 





이어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 



 \"우리 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어야만 저을 수 있다\"고 하며 

절의 규모와 큰 솥이 있음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두 스님의 자랑을 듣고 있던 돌구멍절 스님은 절의 규모 등으로 자랑 할 게 없자,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한바탕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 삼층석탑 ◈




중암암 일주문을 되돌아 나와 오른쪽 언덕위를 

오르면 아담한 삼층석탑이 있다.  잠시 참배하고 

가파른 산등성을 오르면 화엄굴이 있다. 



 ◈ 화엄굴 ◈




속세의 욕심과 모든 허물을 벗어 던지고 어두운 

바위굴을 더듬어 가면 좌측으로 꺽어지고, 

그 좁은 틈새 끝에는 어둠이 끝나고 밝은 

화엄의 세계가 펼쳐진다



 ◈ 삼인암 ◈






화엄굴을 벗어나 다시 바위 틈새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정상에 큰 바위가 세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삼인암이라고 했던가? 삼인암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기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팔공산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만년송 ◈






삼인암을 지나서  바위틈새로 내려 가면 작은 금송에

만년송이라는 명찰이 달려있다. 아마 만년송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금송에 명찰을 달아 놓은 듯하다.



아무렴은 어떠랴? 이곳에는 굳이 만년송이 아니더라도 

흙 한줌 없는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뻗으며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만년을 더 살것 같은

등굽은 소나무들이 주위에는 많은 것을....



삼인암으로 불어 오는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피해

다음 목적지인 운부암으로 향했다



 ◈ 운부암 ◈








창건할 당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고 하여 명명되었다는 운부암은

이름 자체에서 세상 모든 영욕이 부질없는 뜬 구름 같은 것이라는

놓을 수 없는 화두를 암자가 품고 있는 수행처이다 

그래서일까? 성철 향곡 일타 스님이 이곳에서

해탈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하다



 ◈ 보화루 ◈








다듬지 않은 12개의 아름드리 나무기둥 위에 서 있는 보화루(寶華樓)가 

불가(佛家)의 입구임을 알린다. 유구한 세월을 암시하듯 

나무빛깔은 진갈색이었고 나무결을 따라 중간중간 갈라져 있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운부난야(雲浮蘭若)가 있고 

오른쪽에 우의당(禹義堂)이 있으며 앞쪽에는 보화루가 있다. 



 ◈ 운부난야(雲浮蘭若) ◈




난야(蘭若)는 아란야(阿蘭若)라고도 하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수행하기 적당한 한적한 숲”이란 뜻이다







고무신 - 임보







댓돌 위의 저 고무신

참 많이도 닳았네

밟으시던 시린 산천(山川)

그 바닥에 고여 있고 

눈물짓던 푸른 달밤도

그 코 위에 출렁이네

꽃가지 타는 놀에 젖던 쇠방울

은하수 매운 강물 뚫던 소쩍꿍

님은 갔어도

맺힌 그 소리들 아직 남아

세상을 흔들고 있네.  

  





달아서 반들반들한 저 댓돌 위로는 몇겁의 신발들이 

오르내리며 해탈을 빌었을까? 춘풍에 뭍어오는 번뇌들

하연고무신이 지키고 있다



 ◈ 우의당(禹義堂) ◈






수백년을 자지 않고 서있으며 

생사의 길 열어 해탈을 지켜 보는 달마



 ◈ 원통전 ◈




보화루 아래를 지나 정갈한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비교적 경내가 좁은 마당에는 파손된 석탑이 놓여 있고 그 뒤로 

단아한 모습의 원통전이 반긴다. 화려한 단청의 흔적은 바래어지고

그 아래로 번져나오는 나무결이 더욱 아름다운 전각이다



원통전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고요한 경내에 퍼지고 있었다

법당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젊은 스님과 상좌 두분만이 아침 예불을 드리고 있어

법당에 들어 예불에 참석하였다



 ◈ 청동보살 좌상(보물 제 514호) ◈










운통전 안에는 보물 제 514호인 청동보살 좌상이 있다. 

금동장식의 화려한 이 불상은 신라 말에 혜철국사가 인도에서 

해금강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이 있다.



 ◈ 은해사 ◈








은해사는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 대웅전 ◈






대웅전 앞에는 보화루가 있고 보화루 좌우로 심검당과 설선당이 있으며 

그 가운데 장방형의 정원이 있는 중정식 가람배치 구조이다. 

중정은 장방형이지만 중간부분에 계단을 축대를 만들어 놓아서 

보화루로 들어오는 참배객이 볼 때 정방형에 가깝게 보여서 

대웅전이 더 웅장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대웅전과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다시 지어 

고찰의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다.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향나무만이 은해사의 긴 세월을 묵묵히 말해줄 뿐이다.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의 삼대 편액이 김정희의 글씨로 채워졌다.



간송 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은 추사선생 글씨 중 

\"은해사\"의 글씨를 이렇게 평했다.

\" 무르익을대로 익어 모두가 허술한 듯한데 

어디에서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다. 둥글둥글 원만한 필획이건만

 마치 철근을 구부려 놓은 듯한 힘이 있고 

뭉툭뭉툭 아무렇게나 붓을 대고 뗀 것 같은데 

기수의 법칙에서 벗어난 곳이 없다. 

얼핏 결구에 무관심한 듯하지만 필획의 태세 변화와 

공간배분이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다.\" 







대웅전뒤 산수유는 만개하여 봄을 알리고 있다



 ◈ 법종루 ◈






 ◈ 석탑 ◈






은해사 암자들은 옛것과 자연의 조화로움이 잘 어울어져있었으나

은해사는 마치 새로 만든 신작로위의 하마비처럼 어딘가 어색하고

화려한 단청색깔은 오히려 천박스럽게 느껴지고 

잘 다듬어진 통나무와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물들에서는

좀처럼 기품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나물에 

호박범벅까지 곁들인  점심은 다시한번 이곳을

찾아오게 할 만큼 맛난 공양이였다



 ◈ 거조암(居祖庵) ◈




거조암은 은해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암자로, 

예전에는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었던 본사였다. 



거조암은 단청없는 독특한 법당, 탱화, 오백나한상의 

세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다



 ◈ 영산전 ◈






우리 나라 목조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거조암 영산전(서기 1375)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건물로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 4곳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



영산전은 건축학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미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나뭇결의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살아 있고 흙벽의 질감이 

부드럽게 다가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영산전은 현재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있다. 



 ◈ 후불탱화 ◈




영산전에 입구에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세련미와

균형을 보여주는 불상뒤 벽에걸린 탱화는 법당 내를

또다른 세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불화들은 청.황,적,,백,흑의

다섯가지 원색으로 주로 그려지지만 영산전 영산탱은 붉은 바탕에

호분으로 선묘만 하였으며 청록색 흑백색은 극히 적은 부분만 사용하였고

붉은색의 짙고 옅음을 통해 모든색을 대신하고 있다



상식을 넘어선 색채를 그것도 붉은색을 거의 단색으로 구사하면서

깊음 맛과 전아한 기품을 창조하고 있다.또한 여타 불화의

변화없는 필선과는 대조적으로 변화 무쌍한 호분의 하얀 선묘가

그려내는 화품도 불화로서는 파격적이다

그 때문에 이 탱화가 더욱 돋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강우방선생은 

기운 생동하는 탄력있고 웅혼한 필치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다른 불화에서의 여느 철선과 달리 획의 굵고 가늘어지는 붓의

터치가 강약이 있고 그 시종이 있었다. 그리고 또 이곳의

영산탱은 색보다 선이 돋보이며,장엄하고 기법도 특이하다

라고 했다





거조암 영산전은 얼핏 보면 건물전체가 경판고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으며 길쭉한 본당도 두드러지는 면을 가지고 있다.

누런 토벽과 나무기둥에는 단청의 흔적조차 없다. 

어찌보면 황당한 이 법당이 탱화의 세련미와 토속미를 

가미하며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간결하고 단순한 건물이지만 내부공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공간감이 훌륭하다. 또 중앙켠 벽에도 널직한 살창을 

두어 조명과 환기의 구실을 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그외에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오백나한상이 있다.

정확히는 526구이며 화강암을 깍아 만든 뒤 얼굴과 머리에

칠을 한 나한상들의 자세와 표정은 다양하다



염주를 돌리거나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하며 어떤 것은 웃는가하면

어떤 것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도 하고

인간의 희로애락과 우비고뇌와 어묵동정이 천변만화한다

그대로 인간사의 한 장면 장면이다,



조각 솜씨가 빼어난 것도, 칠이 아름답게 올려진 것도 아니지만

거친 듯 무심한 조각과 졸렬한 듯 천진한 채색이 잘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2006년 03월 12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