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라톤으로 내 삶의 전환점.


그 동안 운동을 통해서 이렇게 멋진 성취감을 느껴보기란 부산마라톤대회(11.24)를 마치고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내 생애에 달리기라곤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개교기념일마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것이 전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위를 엉성한 운동화를 신고
10km를 뛰다 걷다하여 근 1시간 30분에 걸쳐 달렸는데,

그 후유증으로 일주일 동안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파
걷지 못했던 씁쓸한 기억 뿐,

제대로 장거리 한 번 달려본 적도 없었는데 54세의 나이에 사람의 일이란 게 정말 우연하게 만들어지는걸까?

친 형님(이근해(42회), 풀코스 24번, 울트라(63.3km, 100km)완주) 의 적극적인 권유로 뒤늦게 마라톤 입문한지

두 달 만에 하프코스를 신청하고, 난 몹시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달리기가 좋다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너무 떠들었고 마라톤과 인연이 되었다는 즐거움은 직원 연수회를 통해서도 홍보했다.

하지만 막상 하프코스를 신청하고 완주하지 못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간 나름대로 동호회도 가입하고 연습을 거의 (일요일 등산을 가는 것을 제외하곤)

매일 200m, 400m, 600m ... 한달 후 8~10km,

두 달 후 10km - 13km를 너무 무리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뛴 이후로 몸에 3달만에 무릎 밑에 인대가 늘어나서 근 15일 동안 (10월24일~  )

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고, 휴식을 해야만 했었다.

직원들도, 친구들도 나이가 나이인만큼 달리기는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것이다. 마라톤에 대한 경외심을 잊어버리고 교만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즐거운 달리기를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도 3개월만에 키 160cm에 체중 67kg(닉 네임: 임신8개월)에서 59kg(똥배가 하나도 없음)

이것만으로도 대 성공이고 대 만족이다.


마라톤대회 전날에는 긴장과 흥분으로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새벽 5시경에 알람소리에 맞추었으나 2시 정도에 눈을 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전날은 거의 가면으로 잠을 설쳤다.

D-day 새벽 5시 30분 집사람이 일어나서 몇 일전 고아놓았던

곰국을 찰밥 두 공기에 말아 억지로 밀어 넣고 7시 다대포로 향했다.

사랑하는 내 아내와 아들이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비록 오지는 못했지만 최종 결승선에서 하늘을 보며 떠올릴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

9시경에 드디어 맑고 푸른바다와 천혜의 절경이 어우러진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1만 2천여 명의 건각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처음 구경하는 마라톤대회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구경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소리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하고 ...

하늘에 투타투타 소리를 내며 떠도는 헬리콥터는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옷을 갈아입고 클럽 사람들과 텐트 주변에서 조깅과 체조를 했다.

긴장이 됐는지 .. 화장실을 계속간다. 벌써 3 번째 다녀왔다.

오전 10시 총성과 함께 풀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면서 오색 테이프와 함께 우렁찬 함성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5분뒤 하프 출발을 연이어 하고 있다.

아주 천천히 ... 조깅 페이스로 달리며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않기로 마음으로 굳게 다지면서 ..

주로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축하를 해주고 있었고,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축하비행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면서 감격의 눈물이 고인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행복감에 겨운 눈물이다.


지난 짧은 4개월 동안 오늘을 달리기 위해서 많은 아픔과 고통과 구슬땀을 흘린 것들이 회상되고 ..

처음 출전하는 대회라서 그런지 출발하면서부터 감격스럽다.

천천히 뛰면서 오늘은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달리는 레이스에 주력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회장님이 몇 번 당부한다.

오버페이스를 하면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가해지기 때문에 후반레이스를 망칠 수 있다고 한다.

빨리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처녀 출전한 나에게 모두들 몇 번이고 이야기 해준다.

너무나 고맙다.


5km까지 최대한 나로선 천천히 뛰었다.

앞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뿐이고 추월을 거의 하지못했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왕초보 달림이로써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뛰었는데도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25분이 좀 지나고 있었다.

순간 너무 빨리 뛰었구나 그것도 3분이나 빨리하는 생각이 든다.


꽤 한참을 달린 것 같았는데도 반환점은 보일 생각을 않더니 벌써 클럽 선생님이 반환점을 돌아 역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갑고 기특한(여자?) 마음에 ..

" 선생님 " 하고 외쳤으나 못 들었는지 휑하니 지나가 버렸다.

반환점을 돌고 을숙도 다리를 건너니 그 때부터

천천히 뛰는 사람과 걷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프뛰는 사람은 중급자 이상인데도 ..


나도 벌써 다리 종아리에 통증이 조금오는 것 같고

발바닥 중앙 모서리에 조그마한 돌이 있는지 자꾸 아프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운동화끈을 풀수도 없고 ..

시계를 보고 시간을 계산해보니 결승선까지

1시간 55분정도 될 것 같은데 다리가 무거워지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15km지점부터는 이상하게도 힘이 솟는 것 같다.

곰국덕분인가? 화분덕분인가?

이후로 다른 사람들의 추월을 한 명씩 한 명씩 하니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짜릿했다.

도중에 키가 자그마한 야무지게 잘 달리는 어떤 아가씨를 만나

서로지지 않으려고 한참동안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질까봐 겁이나서

중도 내가 포기하고 말았다.

아마 서로간에 기록 단축(?)에 다소 도움이 되었을 듯 ..


그렇게 열심히(?) 뛰다보니

어느새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해 결승선이 보였다.

골인을 하면서 시계를 보니 1시간 54분 12초 정도의 기록이 예상되었다.

다리 근육이 뻗뻗하게 굳었고 발바닥엔 돌이 아니고

밑창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올라와서 3cm가량 찰과상을 입은 것
외에는 별다른 부상도 없이

완주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바로 칩을 반납하고 완주메달과 우유, 바나나, 초코파이를

받아들고 바나나를 먹으면서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우리 동호회 텐트로 돌아오니 모두가 기립박수로 맞이 해주니 동료애가 한없이 더 느껴진다.


드디어 해냈다.

단 한번도 걷지 않고, 끝까지 힘차게 21.0975km를 완주한 것이다.

대충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나니

풀코스를 뛴 선수들이 들어 올 때가 되어 응원 겸 마중을 나갔다.

완주자들의 모습을 보고 하늘의 별 따기지만

나도 언젠가는 풀코스 완주자 대열에 서리라 하고 각오를 다짐하고

부산마라톤은 이렇게 끝이 나고 두 달 후에는 다시 이봉주 고성 마라톤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동호회 팀 훈련에도 부지런히 참석하여 여러 가지 지도 조언을 받고,

체계적으로 훈련해서 기록을 10분 정도 당겨야겠다는 성급한 생각이 벌써 들기 시작하니,

나도 이제 달리기 중환자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나이를 초월하여 달리기는 연습을 통해 기록이 향상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2002. 11. 26. 이삼해 올림 (4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