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고등학교재경총동창회

제목	*<시론>: 광복,분단 70년 ! 그 이후!/평양성 의 낙조.<6>
글쓴이	박명식(44) [ mspark4905@hanmail.net ]
작성일	2015-01-13

평양성에 조여드는 落日의 조짐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입력 : 2015.01.13 05:30

한반도의 분단은 3.8선, 소련군의 진주 그리고 냉전체제의 산물로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서북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일종의 정신적 독립성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옛 왕조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었고
중앙정치에서 배제된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내재적 폭발력을 갖고 정치적 정체성을 갖추게 된 것이 북한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북한 정권을 보는 하나의 역사적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접근법에 따라서 북한 정권의 종말을 예측할 수 있는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평안도 사람들의 지역의식은 유별난 점이 있다.
그래서일까.
평안도 출신의 식자들은 삼국통일이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 주도하에 이루어졌었더라면
한국의 역사가 훨씬 더 발전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사람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함석헌 씨였다.
그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도 함 씨는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사람들은 일부는 당나라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또 일부는 유민의 신세가 되어 스스로 한반도를 떠나기도 했었다.
고구려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미 한반도에서의 통일정부에 대한 정통성 인정을 공공연히 거부해오곤 했다.
그런 거부의사의 표현이 고려시대 때 묘청의 난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평안도 출신의 중인 묘청은
조정에서 고려의 수도를 개경(개성)에서 서경(평양)으로 옮기려는 천도론을 가지고
김부식과 한 때 예각적으로 겨루다가 결국은 패하게 되었다.
그래서 묘청이 대위국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稱帝建元을 시도해보려다 결국은 실패한 적도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평안도 사람들은
중앙으로부터 ‘서북인’이라는 칭호 하에 냉대 아닌 냉대를 받았었다.
조선조 500년 역사를 보면 어느 왕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비들의 국가와 왕에 대한 상소활동이 언제나 활발했었다.
국가 시책에 대한 혹은 왕의 정책과 처신에 대한 시비곡직을 따지는 공론의 장에서
유생들은 하나의 강력한 論劾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곧 상소였다.
이 상소활동을 어느 지역의 유생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벌렸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 지방이 중앙정부에서 갖는 발언권의 무게와 비례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머리 좋고 말 잘하고 똑똑하기로 따지면
어느 지역의 유생 못지않았을 평안도의 유생들만은 이 상소활동에 별반 열의를 보이지 않았었다.
열의가 없었다기보다는 그만큼 조정에서의 발언권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영조 때의 상소를 각 지역별로 통계를 낸 것을 보면
경상도가 13.8%, 전라도가 9.6%, 충청도가 14.0%, 경기도가 11.5%,
황해도가 4.3%, 함경도가 3.2%, 평안도가 2.3%, 강원도가 1.3%였다.
(설석규, 조선시대 유생상소와 공론정치)
이 통계로 볼 때 영남, 호남, 호서, 기호지역보다 평안도 유생들의 상소 횟수가 훨씬 적었다는 것은
그 시대 평안도 유생들의 중앙정치 참여율과 발언권의 비중이
현저히 낮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영조 때 50년간 436건의 상소가 있었지만 평안도는 이 중 단 10건의 상소만 냈었다.
더구나 인구가 함경도보다 적어도 3배 이상인 평안도 유생들의 상소 횟수가
함경도보다도 적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경도는 같은 북쪽이지만 중앙정부와의 연계성이 평안도보다 훨씬 그 밀도가 높았었다.
이것은 조정에 출사했던 함경도사람들의 면면에서도 잘 나타나는 사실이다.
특히 이 시절에는 각 도의 유생들이 서로 연통하여 연합소를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연합소의 비중은 12.2%였다.)
팔도 유생들이 다 참여하는 이 연합소에도 평안도 유생들은 빠져 있었다.

조선조시대의 보학에 밝았던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조선조 500년간 과거 급제자를 가장 많이 낸 지역이 둘 있었다.
하나는 경상북도의 풍기요, 또 하나는 평안북도의 정주였다.
두 지방 다 약 390명 정도의 과거급제자를 낸 바 있다.
각 도별 과거급제자 수는 한영우 교수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1663명), 평안도(892명), 경상도(690명), 경기도(618명), 충청도(607명),
전라도(346명), 함경도(181명), 강원도(129명), 황해도(89명) 제주(39명)의 순서였다.
평안도는 서울을 빼면 지방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평안도 출신으로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홍경래의 난이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생겨난 평안도의 별명 아닌 또 다른 별명은 逆鄕이었다.
삼국통일 이래로 내려온 중앙정부에 대한 복속 거부와 정통성 부정은
고려 500년과 조선조 500년을 거쳐 1000년 이상을 이어져 내려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안도인들이 가지는 모반과 반심과 역심은 그 줄기가 어디에 닿아있든지
그 연원이 어느 물줄기에서부터 비롯되었든지 간에 끈질기게 지속하여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펑안도인들의 ‘역심’은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만의 존재 이유와 그들만의 존재타당성과 그들만의 정체성을 강고하게 다져온
하나의 근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평안도는 일종의 한반도 속의 정치적 孤島였다.
영어식 표현으로 고립 영토(political enclave)였다고나 할까.

흔히 북한의 공산정권이 들어선 것을 3.8선 때문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공산정권의 수립 때문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북한의 3대에 걸친 공산정권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말로 설사 공산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안도 지역의 정치적 원심성은
언젠가 그 역동적 逆心을 발휘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실질적으로 평안도 정권이다.
2300만의 북한 인구 중 적어도 3분의 2인 1500만 이상이 평안도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평안도는 다른 도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특히 배급면에서도 특혜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평양주민들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북한 정권하에서의 일등시민이다.
평양에서 오래 살다 나온 어떤 외국인은 이런 얘기를 했다.
즉 북한 사람들은 민족의 개념이나 동족의 개념에 대한 애착은 희박하다.

그러나 북한이란 국가에 대한 애착은 대단히 강하다.
남한에서는 동족이니 어쩌니 하지만
실제 북한에서는 동족 개념보다는 북한이라는 국가 개념이 훨씬 상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은 옛날 왕조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을 능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사람들이 느끼는 북한 정권에 대한 왕조적 충성심이
바로 이것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의 근저에는 그리고 이런 국가 정체성의 밑바닥에는
평안도인의 유별난 자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자의식의 밑바닥에는 역사의 정통성은 평안도에 있다는 강한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자의식이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한 북한 정권은 끄떡없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북한 정권은 독재 정권 이상의
그야말로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독한 정권이지만
그런데도 그 정권이 유지되는 것은 바로 잠재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평안도인에 의한, 평안도인을 위한, 평안도인의 정권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었다.
북한정권에 빌붙어 있는 황해도나 함경도는
기실 하나의 조역 내지 부역의 역할을 할 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남한으로 넘어오는 이북사람들은
그래서 그런지 평안도사람들은 드물고 대부분 함경도 사람들이다.
북한정권은 평안도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한은 생존이 가능한 정권이다.
북한에서는 여론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망정이지 만약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평안도가 다른 도에 비해서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훨씬 높게 나올 것으로 본다.
북한 정권은 평안도인들이 지지하는 한은 그 정권은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평안도인의 자의식에 이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아니 균열은 이미 수년 전에 시작됐고
이제는 그 균열의 파열음이 폭발음으로 터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이다.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평양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미국의 침략보다는 오히려 북한 내부에서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것을 더 걱정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조선일보 2014.9.27-28.)
90년대부터 북한의 붕괴론은 꽤 유행을 탔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이 끄떡없는 것을 보고
이제는 일반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북한의 붕괴설에 대해서는 쐐기를 박으려고 한다.
90년대에 유행했던 북한 붕괴설은 틀린 예측은 아니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붕괴 시작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정권의 정통성이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만한 여러 가지 조짐이 있었다.
다만 붕괴만 되지 않았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 들어와서는 90년대보다는 붕괴의 조짐이 한층 더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는 시작의 시작이 아니라 붕괴 시작의 끝쯤 되었다고나 할까.
이때도 붕괴설은 여전히 유행했었다.
그리고 그 붕괴설은 틀렸었다기보다 다만 시기가 약간 어긋났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끝의 시작이다.
시작의 시작에서 시작된 붕괴설은 시작의 끝을 거쳐 이제 끝의 시작으로 옮겨 붙었다고나 할까.
북한 정권은 외부의 환경이나 외부의 압박이나 압력에 의해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일성이 타고 앉았던 정통성의 탑이 100m 높이였다면
김정일의 그것은 50m쯤 되었고
이제 김정은이 타고 앉은 정통성의 탑은 20m도 안 되는 높이로 서서히 주저앉고 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받쳐주던 북한 인민들의,
특히 평안도 사람들의 유별난 자존심과 역사적 정체성은 이제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한때 야당 국회의원과 장면 정부하에서 장관을 지낸
평안도 출신의 주요한 씨는 1960년대 중반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공산주의와 제일 안 맞는 기질을 가진 것은 평안도 사람들이다.
평안도 사람들은 가장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평양은 더는 어찌해볼 수 없는 개방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 이미 오래다.
북한에 있는 휴대폰만 500만대가 넘고 그중에 대부분은 평양에 있다고 한다.
평양은 가장 감시가 철저한 도시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부의 정보가 가장 빨리 스며드는 곳이다.
이 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개방적인 기질을 가진 평안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평안도 사람들이 지켜온 독립왕조를 통한 자존심의 실체를
스스로 알게 되었고 또 포기할 때가 되었다.
평양시민 하나하나의 가슴속에는
그들이 지켜온 북한 왕조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적인 실의와 더는 어찌해볼 수 없는
낙담의 그늘이 드리운 지 오래다.
가장 개방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평안도 사람들은
이제 폐쇄와 은둔과 정치적 자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새 바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평안도 사람들은 70년에 걸친 역사적 실험을 통해서
그들의 독자적 정체성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신을 지켜주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는 이 사실.
그리고 이 자존심이야말로 평양정권을 지켜주었던 정통성의 핵심 소재였지만
이제 이 소재는 완전히 유실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는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평양 정권을 받쳐줄 평안도 사람들의 자존심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버라드 대사가 얘기한대로
‘반란의 기미’를 어디에 가든 누구를 통해서든 서로 간에 절절하게 느끼는 시절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오늘 주저앉은들 혹은 내일 평양의 어느 구석에선가 반란의 깃발이 올라간들
또는 함경도나 양강도의 어디서 쿠테타군의 캐터필라 소리가 들려온들 누가 놀라겠는가.
평양성은 미구에 낙일의 비운 아닌 행운의 날을 맞이할 것이다.
소련의 공산정권은 72년간 유지되었었다.
북한의 정권은 올해로 70년을 맞이하고 있다.
평양도 이제 마지막 2년을 남겨놓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원래 풍수적으로 ‘떠나가는 배(行舟)’의 형국이라고 한다.
이제 그 배가 평양을 떠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그 떠날 날이 1년이면 어떻고 2년이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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