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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9주년 맞는 제2연평해전'.
글쓴이 박명식(44) [ mspark4905@hanmail.net ]
작성일 2021-06-27

[펜앤 인터뷰]
'19주년 맞는 제2연평해전' 예측했던 제5679대북감청부대장의 피끓는 성토
 조주형 2021.06.26 15: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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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비정과 충돌하는 해군 고속정./(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2년6월29일은,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PKM-357)이 
북한의 기습 포격으로 침몰한 날이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지 19년이 되는 이번 29일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이날 운명을 달리한 장병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북한의 기습이 있었던 당일 아침(10시25분)은 2002년 월드컵 최종경기들이 치러지는 날로, 
금강산 관광도 한창 추진되던 시기였다. 일명 '햇볕정책' 시기다.

이같은 정세에 발맞췄던 당시 정부는, 
우리 해군의 윤영하(소령)·한상국(상사)·조천형(중사)·황도현(중사)·서후원(중사)·박동혁(병장)을 
살릴 수 있었던 '특수감청정보(SI)'를 의도적으로 묵살했다는 증언이 터져나옴에 따라 
'北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한몸에 받았다. 
바로 북한군의 도발징후가 담긴 SI를 최초 탐지했던 
제5679정보부대장 한철용(육사26기) 당시 육군소장의 보고를 외면했다는 것.

제2연평해전 13주년인 29일 경기도 평택 해군제2함대사령부에서 기념식이 열려 
해전영웅들의 얼굴 부조상 앞에서 유가족들이 얼굴을 만져보고 있다./ 2015.6.29(사진=연합뉴스)

이를 탐지·보고한 한철용 당시 육군소장(현재 예비역)은 정권의 칼을 맞아 30년간 몸담았던 군을 떠나야했고, 
당시 6명의 휘하 장병을 잃으면서도 해전을 지휘했던 해군 제2함대사령관은 
절망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났다. 
반면 이를 외면한 군수뇌부는 놀랍게도 단체로 진급하기에 이른다.

기자는 지난해 6월, 당시 대북감청정보를 보고했다 군을 떠나야했던 
제5679부대장 한철용 예비역 육군소장과 직접 인터뷰를 한 적 있다. 
1년이 지난 이번 26일 오전,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평해전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알렸다.

오는 29일, 잊혀져 가는 제2연평해전 당시 
이를 사전 예측함에 따라 6명의 청년들을 살릴 수도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한철용 예비역 육군소장은 지난 2002년6월29일 
북한의 도발징후를 예측했던 국군 제5679부대, 일명 대북감청부대의 사령관이었다.
/2021.06.26(사진출처=한철용 예비역 육군소장, 편집=조주형 기자)

- 장군님, 제2연평해전 발발 전 북한군의 도발발 징후가 담긴 특수정보 'SI'를 입수하셨었다고요?

▲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는 말을 못했습니다만...'연평해전'이라는 영화에서도 이미 나왔듯이, 
더이상 비밀도 아니니 말씀드릴게요. 
문제의 SI는 14자입니다. 
제2연평해전이 터지기 2주전에 확인된 SI는 
"(北)해안포 발포준비 중이니 방심말 것(14자)"이에요. 
이건 北 8전대사령부에서 北경비정으로 하달한 내용입니다. 
그게 결정적인 정보죠. 
당시 항공사진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등이 북한군 인근 주둔지에서 발견됐고요. 
당시 우리는 해안포 사격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일 사격이 아니겠느냐고도 봤습니다.

- 14자 단위 SI 말고도 또다른 특수정보도 있었습니까?

▲ 그럼요. 연평해전이 터지기 불과 이틀 전에는 15자 단위의 SI가 포착됐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北)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음"이라는 겁니다. 
이건, 北경비정이 바다로 자기들 딴에는 임무를 받아서 출전을 한 것인데, 
정작 北 8전대사령부에서 함포사격 명령을 하달 받지 못하니까 北사령부에 무전을 친 겁니다. 
우리 군이 입수한 겁니다. 
이를 보면 100% 도발한다고 판단을 했는데, 당시 국방부가 이걸 뭉개버렸어요.

- 그 때 한창 금강산 관광이네 뭐네, 그랬던 것 같은데요?

▲ 묵시적으로,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게 국방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6·15남북정상회담을 하고서 노벨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의중이 그러하니 밑에 있는 사람들은 지시를 따랐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SI가 도발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깔아 뭉개지 않았겠습니까?

제2연평해전 때 반파돼 퇴각하는 북한 경비정./(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런데, SI는 왜 특수정보라고 보는 겁니까? 

▲ 敵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일종의 逆정보일수도 있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도의 취급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특수정보(Special Intelligence)'인 것이죠. 
당시 이같은 특수정보는 우리 777사령부(제5679부대)가 취급했었습니다.

- 보시기에, 당시 전황이 어땠습니까?

▲ 北 순안공항으로 敵지휘관기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됐어요. 
이를 해석하면, 북한군의 고위군관이 지휘 중이라는 정황으로 읽히죠. 
그렇다면 왜 이동했을까, 
상급부대 보고를 위한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동선을 보면, 北 묘향산이라는 곳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군의 전쟁지휘소가 있는 곳으로 보고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 바다에서의 해전 상황은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 당시 자료 등을 종합하면, 北해군사령부가 개입했어요. 
北8전대사령부 말입니다. 
독특하게도 北해군사령부는 평양 일대, 중계소는 황해도 일대에 분포해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황해도에 산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북한군은 말단부터 중앙부까지의 일체적인 통신지휘보고가 제한됩니다. 
그래서 北 순천중계소를 통해 北 8전대사령부로 중계합니다. 
'포성이 들리느냐'라는 내용인데, 
이는 곧 북한군지휘부가 말단에다가 '지시에 따라 함포사격 했냐' 이거죠. 
그러다가 10분이 경과하니까 '사격 끝났으면 돌아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北해군사령부에서는 해전상황을 모두 알고 복귀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2002년6월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 부정장으로 참전해 
전사한 정장 윤영하 소령을 대신해 현장을 지휘했던 이희완 해군중령/2017.06.22(사진=연합뉴스)

- 그때 우리 해군을 지휘했던 정병칠 제독님이 결국 타계를 했다는데...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 그 분이 제2함대사령부사령관이었어요. 
제2연평해전의 책임을 전부다 떠앉았습니다. 
정보부대가 탐지한 적에 대한 특수정보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가 무시하는 일련의 만행을 저질러 놓고서 
그 책임은 전부 정병칠 제독이 다 지게 된 겁니다. 
휘하 장병 6명이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정제독 상관이었던 당시 해군작전사령관을 포함한 지휘부는 해군참모총장 등으로 진급합니다. 
그 역시 해군의 작전사령관으로써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이게 어떻게 전적으로 제2함대사의 책임입니까? 
햇볕정책 기조 속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파악하면 무시당하고, 용감히 싸우면 전역해야 하고... 
결국 정제독님은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2009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참, 저도 어떻게 할 말이...

▲ 그 때 해전 상황을 보면 말입니다. 
북한군이 기습포격을 가했고, 그러자 정제독이 함포사격을 했습니다. 
완전히 폭침을 시켰어야 됐는데, 우리 군지휘부에서 중지하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휘하 부하장병들은 목숨 걸고 싸우다 세상을 떠났는데, 정작 정제독은 이렇게 되고, 
그래놓고 또 상급자는 해군참모총장으로 영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합참의 작전부장, 정보부장 이런 사람들이 
그동안 SI로 예측됐던 북한군 도발예증을 깔아뭉개버릴 때는 언제고, 
그런 사람들이 터키대사관 이런 곳으로 별 하나 더 달고 나가는, 이게 제대로 된 거냐고요.

10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고등학교에 '제2연평해전 영웅' 故 윤영하 소령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윤소령은 고속정 참수리-357호 정장으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다 
2002년6월29일 오전 10시께 
NLL을 침범한 북한경비정의 기습공격에 맞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송도고등학교는 윤소령의 모교다. /2021.3.10(사진=연합뉴스)

- 그때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정보지원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한 소장님을 겨냥했는데, 이건 뭡니까?

▲ 조 기자님, 군대 다녀오셨으니 아실 겁니다. 
물론 그건 규정에도 없는 일입니다마는, 
지휘관이 명령을 하는데 즉각 반박이 가능합니까? 
사건이 일어나고서 1주일 만에 한미정보장군단회의(7월4일)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국방부가 참 가관인게, 
'北경비정 단독행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2주전부터 보고한 14자, 15자 짜리 SI는 뭡니까? 
그동안 우리 5679부대는 독특한 부대임무 특성으로 
지난 46년간 기무사령부와는 별개로 보안점검을 받았는데 갑자기 특별조사라뇨.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그게 규정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법원까지 갔지만, 징계는 부당하다고 소명됐어요.

-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어떻게 보시는지?

▲ 정말 안타깝습니다. 
2002년6월29일 월드컵이 있던 날 우리 청년 장병 6명이 북한군과 싸우다가 戰死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면 故 윤영하·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박동혁인데요. 
그 때 국방부장관은 물론이거니와 대통령하고 국무총리가 장례식에 왔습니까? 
햇볕정책 한다면서 북한하고 이래저래 맞춘다는데, 아니 어떻게 나라를 지킨 국민들을 이렇게 대합니까? 참.../

22일 오후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영화 '연평해전' 시사회에서 
한 해군병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5.6.22(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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