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수시절56] 박성화, 한국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한국축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꼽을 만한 선수는 누구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박성화(56)와 유상철(40)을 꼽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성화는 사실상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라고 할 만 하다.
박성화는 1975년 처음 대표팀에 선발된 이후 1984년까지 10년간 활약했다. 미확인 경기가 많아 정확한 A매치 기록 기입이 유보되었지만, A매치 출전이 110회 정도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홍명보(135회), 이운재(132경기), 이영표(127회), 유상철(122경기), 차범근(121경기)에 이어 역대 A매치 6위권(정확한 기록은 추후 반영 예정)의 대기록이다.
그는 멀티 플레이어답게 주 포지션인 스토퍼 외에도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까지 공수를 오가며 뛰었다. 강력한 파워와 제공권에 성실함과 끈질김을 무기로 묵묵히 팀플레이를 펼쳤고, 수비를 주로 하다가도 팀이 지고 있을 때에는 공격으로 올라가 특유의 헤딩으로 활로를 뚫었다. 특히 1979년 한일 정기전에서는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어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전 국민의 스타로 떠올랐다.
또한 박성화는 프로리그(당시 수퍼리그)가 처음 창설되었던 1983년에는 할렐루야를 우승으로 이끌며, 초대 MVP에 오르기도 했다.
늦게 시작한 축구
울산 울주에서 태어난 박성화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늦게 축구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청량중에서 핸드볼을 했다. 소질을 인정받아 울산공고 핸드볼부에 스카우트 되었을 정도. 그러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체육선생이 축구를 권유했고, 결국 축구부가 있는 남창중으로 전학을 가 본격적으로 축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씨름도 하고, 핸드볼도 했죠. 전부 정식 팀은 아니었는데, 도민체육대회 예선에 나가 정식 팀들을 이기곤 했어요. 그것을 보고 울산공고 핸드볼부에서 소질 있다고 장학생으로 오라고 해서 입학이 확정됐었죠.”
“그러던 중에 중3 12월경이었나? 점심 먹고 애들과 볼을 차고 있는데, 체육선생님이 부르셔서 축구를 권유하시더군요. 지역 체육교사들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남창중 체육선생님이 축구에 소질 있는 아이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셨나 봐요. 저도 원래 축구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 축구에 입문한 박성화는 졸업을 하지 않고, 남창중에서 1년을 더 보내기로 결정했다. 축구를 위해서였다. 청량중에서는 만류했지만, 다행히 집에서는 특별한 반대를 하지 않아 결국 남창중에서 1년을 더 다니게 됐다.
"제가 결정하고, 둘째 형님과 의논한 뒤에 부모님께 말씀 드렸어요. 물론 부모님은 1년을 더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신 듯 했지만, 제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주장해서 승낙하셨죠. 오히려 청량중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학교 생활도 모범적이었고, 핸드볼로 울산공고 장학생도 확정된 상황에서 1년을 더 다니면서 축구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모험적이긴 했으니까요."
 
명문 동래고로 진학..기본기의 벽에 가로막히다
남창중에서 1년간 축구의 기본을 닦는데 몰두한 박성화는 부산의 축구 명문 동래고로 진학했다. 그는 축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세기가 떨어졌기에 수비수로 활약했는데, 체격이 탄탄하고 스피드도 갖췄으며, 무엇보다 엄청난 점프력을 타고났기에 수비수에 적합했다.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초가 부족했지만, 파워와 헤딩력, 킥과 태클 등이 괜찮았기 때문에 경기를 뛸 수 있었어요. 덕분에 동래고에 진학했죠. 동래고에서도 수비수로 뛰다가 팀이 지고 있으면 공격으로 올라가 헤딩 경합을 통해 공격의 활로를 뚫곤 했죠."
이 무렵부터 박성화의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은 시작됐다. 반드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강인한 정신력에 탄탄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수비수로서 자리매김했고, 동시에 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최전방으로 올라가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변신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드필더로 나서 공수의 밸런스를 맞추기도 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박성화는 고3이던 1973년, KFA(대한축구협회)에서 야심차게 발족시켰던 고교상비군에 뽑혔다. 전국에서 33명의 고교 유망주들이 선발됐고, 그 면면은 화려했다. 허정무, 조광래, 최종덕, 김강남, 김성남 등이 박성화와 함께 훈련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들은 방학을 이용해 당시 한양대 최은택 감독 밑에서 1달 반 동안 집중 조련을 받았다.
그러나 또래 최고 선수들과의 훈련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축구를 시작한 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던 박성화는 기본기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본인에게도 이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당시 장덕진 회장님이셨는데, 젊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관리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자는 생각으로 33명의 고교상비군을 뽑으셨죠. 태릉에서 훈련했는데, 이 소집훈련을 통해서 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리프팅 다섯 번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창피했죠."
"제 특기는 수비를 보면서 잘 뛰고 헤딩과 태클을 잘하는 것이었고,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선발될 수 있었죠. 그런데 최은택 감독님은 육성에 초점을 맞춰 기초 위주로 집중적으로 시키셨거든요. 주위를 살피면서 볼을 받아 컨트롤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훈련이었고, 기초도 부족하다보니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춰서 얼굴에 맞고 그랬어요. 다른 친구들을 잘했는데 말이죠."
그러나 박성화는 거기서 무너지지 않았다. 끝까지 모든 훈련을 다 소화하면서 죽기살기로 훈련 페이스를 따라갔다. 또한 소집했을 때와 해산하기 직전에 치렀던 축구이론 시험에서는 모두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최고의 선수들이었고, 그 속에서 고강도의 훈련을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축구가 어떤 건지 처음 느꼈죠. 그럼에도 훈련은 뒤처지지 않고 다 견뎌냈어요. 그리고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제 나름대로 기초훈련을 많이 했죠. 남들 쉬는 시간에도 볼과 노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기본기를 익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미 많이 늦긴 했었어요."
"제가 평소에도 유소년 축구를 강조하는 것이 다 이런 것 때문입니다. 기본기는 유소년 연령대를 지나가버리면 습득하기가 훨씬 힘들어지거든요. 유소년 시기에는 모든 것을 바로바로 습득할 수 있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힘듭니다.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죠."
“축구이론 시험의 경우 아무래도 제가 중3때까지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책상 앞에 앉는 버릇이 되어 있었어요.(웃음) 그리고 당시 동래고는 운동 선수들도 정규수업을 모두 받았습니다. 정사용 교장선생님과 안종수 감독님이셨는데, 아침 9시에 수업 들어가서 6교시까지 모두 받았죠. 그 이후에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죠. 새벽훈련하고, 수업 다 받고, 오후훈련을 했으니까요. 덧붙여서 경기 끝나면 그 날 본인의 플레이의 좋았던 점과 부족했던 점을 분석해서 리포트로 작성하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제 동기가 13명이었는데, 그 중 5명만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웃음) 나머지는 못 견디고 나갔죠.”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지도해주신 것이 너무 고마워요. 항상 공부하는 습관을 길렀고, 경기나 자기 플레이를 분석하고 글로 정리하는 습관도 얻었죠. 저는 지금도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고려대 진학..대표팀에 선발되며 전성기 열어
어느덧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되었던 박성화는 일찌감치 고려대행을 결정지었다. 당시 연세대와 한양대 등에서도 그를 노렸지만, 이미 고2 시절에 학교의 방침에 따라 고려대행이 결정됐고, 바뀔 여지는 없었다.
“연세대에 진학한 동래고 선배가 계셨는데, 어느 날 내려오셔서 저를 데려가려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선수 납치가 비일비재했거든요.(웃음) 그런데 동래고에서는 그런 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 선배가 가자고 하길래 제가 ‘선배님, 동래고가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라고 말했고, 상황은 끝났죠.(웃음)“
“그리고 고교상비군 시절 잠시 지도하셨던 최은택 감독님께서 제 성실한 부분을 좋게 보셨는지 한양대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감독님께 죄송스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못 가는 이유에 대해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 정사용 교장선생님과 안종수 감독님은 ‘성화의 플레이 스타일로 볼 때 고려대가 가장 잘 어울린다. 장래를 위해 고려대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저도 전적으로 두 분을 신뢰하고 고려대행을 택했습니다.”
박성화는 고려대에 진학하자마자 주전으로 발돋음했다. 당시 고려대는 황재만(4학년), 차범근(3학년)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박성화 뿐 아니라 같이 입학한 최종덕, 전인석, 김강남, 김성남 등도 주전을 꿰차며 새내기 돌풍을 일으켰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박성화는 그 해에 대표2군(충무)에 선발되어 메르데카배에 참가했다. 그리고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이 부진하면서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자 1975년에는 대표1군(화랑)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이 때도 박성화는 수비와 공격을 넘나들었다. 소속팀이나 청소년대표팀의 레벨을 뛰어넘어 당대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 있는 대표팀에서도 수비와 공격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박성화가 처음이었다.
“대표팀에 처음 들어갔던 1975년부터 공수를 오갔죠. 수비를 보다가 팀 상황에 따라 공격수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헤딩에 있어서 월등했고, 득점 감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역할을 해냈던 것 같아요. 재미있었던 것은 수비와 공격으로 나눠 훈련을 하는데, 그럴 때 저는 어디로 갈지 난감했어요.(웃음) 코칭스태프에서 어디로 가라고 이야기 듣고 가곤 했었죠.(웃음)”
“그러나 사실 수비수는 기술이 조금 부족해도 티가 잘 나지 않지만, 공격수는 기초가 없으면 바로 앞이 깜깜해집니다. 대표팀에서는 저에게 공격수 훈련도 시켰는데, 기술적으로 힘들었죠. 기초가 부족한 것에 대한 압박감은 은퇴하기 직전까지도 계속 됐습니다. 이 때도 내 실력이 대표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오려고 했죠. 그냥 나올 수는 없으니까 아프다고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결국 진단서를 못 받아서 무산됐지만...(웃음)”
“제가 부족한 것을 너무 잘 알았기에 은퇴 직전까지도 기초훈련을 많이 했어요. 지도자가 되어서도 기초를 강조하는 것은 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 가장 기초인 구구단을 외지 못하면 수학을 풀 수가 없잖아요. 마찬가지죠. 우리는 기초를 무시하는 가운데 당장의 결과를 위해 계속 변칙적인 훈련을 하곤 해요. 지금은 결과를 얻을지 몰라도 발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드는 거죠.”
 
박성화 본인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매 순간 고뇌했지만, 대표팀은 그를 꾸준히 찾았다. 박성화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믿음직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당시 한국축구는 메르데카배와 킹스컵 등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 대한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1977년 열린 아시아 예선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고, 호주와 이란의 벽에 막혀 탈락하고 말았다.
월드컵 진출의 좌절을 뒤로 하고, 1년 뒤인 1978년에 박성화는 의미 있는 우승을 경험한다. 바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북한과 공동 우승을 차지한 것. 북한과의 결승전은 대표팀간 최초로 맞붙는 대결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관심 속에 열렸다. 당사자인 선수들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남북대결은 사생결단의 분위기였죠.(웃음) 우리는 일본과 중국 등을 연파하고 올라갔고, 북한 역시 승승장구했어요. 북한과의 결승전은 대회 폐막식에 앞서 열렸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죠. 당시 메달 경쟁에서는 우리가 이긴 상황이었지만, 대한체육회 김택수 회장까지 직접 오셔서 반드시 이겨야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여기서 지면 메달수와 상관없이 우리가 진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부담을 많이 줬고, 당시 분위기가 북한과 만나는 자체만으로도 긴장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로 인해 경기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잤죠. 긴장해서 진땀만 흘리고, 당시에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는데, 화장실 가서 기도까지 했습니다.(웃음) 같은 방을 쓰던 (김)강남이는 당시 불교 신자였는데, 좌선하듯 앉아서 중얼거리면서 기도하고 있었고요.(웃음)”
경기는 남북 모두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이었고, 결국 연장전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공동 우승으로 끝났다. 박성화 역시 풀타임을 소화하며 수비진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최고의 순간..1979년 한일 정기전 해트트릭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기세가 오른 박성화는 다음 해인 1979년,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일본과의 대결은 언제나 우리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이벤트였다. 1979년 6월 16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은 박성화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줬다.
당시 대표팀은 김재한의 은퇴와 차범근의 독일 진출로 인해 공격진에 큰 공백이 생겼던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당시 장경환 감독은 박성화를 처음부터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는 것을 구상했고, 일본전에서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성화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신현호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한국이 기록한 네 골에 모두 관여했다. 이런 활약으로 한국은 일본을 4-1로 대파했다.
“아마도 축구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이 그 경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한일전을 앞두고 감독님께서 저를 공격수로 넣겠다고 하시는데, 부담도 컸어요. 물론 경기 상황에 따라 공격으로 올라가기도 했지만, 전문 공격수도 아닌데 그런 빅 매치에 처음부터 공격수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요. 감독님은 저의 제공권을 기대하신 거였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골 모두 발로 넣었어요.(웃음) 마지막에는 (허)정무의 패스를 받아 크로스를 올렸고, 이것을 신현호가 발리슛으로 넣어 3골-1도움을 기록했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6월 17일, 이번에는 차범근의 독일 진출을 기념하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올스타전에서 다시 한 번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틀 연속 해트트릭의 대기록을 달성한 것.
“이 날은 전날과는 반대로 머리로만 세 골을 넣었습니다.(웃음) 역시 동대문운동장이었는데, 같은 운동장에서 한 선수가 이틀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라고 그러더군요. 어쨌든 그 두 경기로 저는 완전히 영웅이 되어 있었고, 당시 포철 소속이었는데 한홍기 감독님께서 특별보호를 할 정도로 언론이나 팬들의 관심이 대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간염과 무릎 연골 파열..시련의 시간이 다가오다
그러나 기쁨의 순간도 잠시. 이후 은퇴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몽이 찾아왔다. 간염과 무릎연골파열이 찾아왔고, 이로 인해 선수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았다.
“간염도 간염이지만, 무릎이 문제였어요. 대학 시절부터 무릎이 아팠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든요. 그런데 1979년 8월인가 뉴욕 코스모스와 친선경기를 갖기 직전에 훈련하는데 무릎 통증이 심하더군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당시는 의료시설이 낙후되어 있어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참고 경기를 뛰었고, 코스모스전에서 두 경기 모두 결승골을 넣기도 했죠. 그런데 이후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 뛸 수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80년초에 대표팀이 사우디와 이탈리아, 미국을 돌며 전지훈련을 했거든요. 저는 뛸 수도 없었지만, 뽑혀서 따라가야 했습니다. 현지에서도 훈련을 거의 못했어요.”
“훈련도 안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더군요. 계속 몸이 안 좋길래 미국에서 병원을 찾았는데, 간염이라면서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죠. 귀국해서 2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체중이 10kg 이상 빠졌어요. 병원에서도 본격적인 운동은 1년 뒤에나 시작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와중에 무릎 검사도 다시 받아보자고 생각해서 정밀 검사를 했는데, 양쪽 무릎 연골이 모두 파열됐다더군요. 당시 한국의 스포츠의학으로는 회복이 힘든 상황이었고, 병원에서도 은퇴하라고 말했죠.”
모두가 박성화의 선수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축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박성화는 기독교를 깊게 믿고 있지 않았지만, 서원(誓願) 기도를 통해 ‘축구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물론 몸 상태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기적처럼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할렐루야에서 뛰게 된 것도 그 때문이죠. 그러나 무릎 연골이 없는 상태에서 뛴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통증은 엄청났어요. 왼쪽 무릎은 통증은 없는데 힘이 없어서 주저앉아버리고, 오른쪽 무릎은 엄청난 통증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힘이 없는 왼쪽에 비해 오른쪽이 나으니까 점프를 뛸 때는 오른쪽 다리를 디딤발로 삼았죠.”
“통증이 너무 심해 대포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포주사를 맞으면 세포를 죽이거든요. 매우 위험해요. 알면서도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는 깊이 넣지 않고 근육에만 살짝 넣어서 통증만 줄일 수 있게 하곤 했죠. 사실 제가 대표팀에서 나름대로 활약하면서 미국과 독일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기도 했지만, 그런 몸 상태로 나갈 순 없었어요. 처음 통증을 느꼈던 대학 시절에 외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면 제 축구인생도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K리그 원년 MVP..멕시코 월드컵 참가는 좌절
서원기도에서 약속했던 대로 박성화는 육군(충의) 제대 후에 할렐루야에 입단해 뛰었고, 1983년 출범한 수퍼리그(현 K리그)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연히 원년 MVP는 그의 몫이었다.
어느덧 선수 생활 말년을 맞이한 그는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을 마지막 꿈으로 삼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그 무대였다. 특이하게도 이 때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나눠 아시아 예선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항상 중동세에 불의의 일격을 맞았던 한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역시 무릎 통증은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울산에서 훈련하는데, 통증이 너무 심하더군요. 사실 할렐루야에서는 통증이 심해지면 함흥철 감독님께 이야기해서 훈련을 빠지곤 했거든요.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결국 대표팀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당시 대표팀도 봐주셨던 경찰병원의 하권익 박사님을 찾아가 무릎 수술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무릎 연골 수술이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쉬면서 치료해보자고 하셨지만, 무조건 해달라고 했죠. 결국 3차 수술까지 했고, 통증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대신 수술로 인해 멕시코 월드컵은 나갈 수 없었죠.”
 
1987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다
1986년 할렐루야가 아마추어로 내려가자 박성화는 친정팀인 포철(현 포항)로 이적했다. 그 해에 29경기에 나서 포철의 리그 우승에 공을 세웠고, 1987년에도 16경기를 뛰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돌아보자면 박성화의 축구인생은 화려하면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뽑혀 10년을 넘게 활약했고, A매치도 110여회 정도 치렀다.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수비와 공격을 오가며 성실한 플레이를 펼쳤고, K리그의 원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퇴하기 직전까지 10여년의 세월 동안 무릎 통증을 견디면서 뛰어야 했고, 간염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실로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성화가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축구를 대표했던 명선수 중에 하나였다는 점일 것이다.
“현역 시절을 돌아보면 앞서 말했지만,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초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아쉬워요. 만약 초등학교 시절부터 했다면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항상 괴롭혔던 부상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예요. 건강하게만 뛸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적어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만이라도 몸 상태가 좋았다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10년 이상 대표 선수를 하며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점은 행복한 부분입니다. 수비와 공격을 모두 소화하면서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영광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한축구협회 기술정책 보고서인 'KFA 리포트' 2012년 1월호 '나의 선수시절' 코너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