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눈뫼 허웅 한글학회장 별세

국민들 가슴에 한글 심은 '우리말 지킴이'





 

▲ 1999년 한글회관에 마련된 주시경 선생 흉상 옆에 서 있는 허웅 한글학회 회장. /조선일보 DB사진  

 

 

26일 별세한 눈뫼 허웅(許雄·86) 한글학회 회장은 광복 이후 대표적인 국어학자였고, 평생을 한글 수호에 몸바쳤던 ‘우리말 지킴이’였다. 흔히 “한힌샘 주시경(周時經)이 국어학의 주춧돌을 놓았고 외솔 최현배(崔鉉培)가 집을 지었으며, 눈뫼 허웅은 그 집을 말끔히 보수하는 역할을 했다”고 비유되곤 했다.



1954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1957년부터 서울대 문리대 및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해 198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교직에 있었던 그는 초기에 중세국어 연구에 몰두했고 언어학 이론 연구에도 깊이 빠졌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에 대한 주해서를 냈으며, 1975년 출간한 ‘우리옛말본’에서는 15세기의 문법을 공시적·총체적으로 연구했다. 국내 최초의 언어학 개론서인 ‘언어학개론’(1963)을 냈고 구미의 구조주의 방법론을 음운론 연구에 도입하는 데도 힘써 1964년 ‘국어음운론’을 펴냈다. 특히 1983년에 낸 ‘국어학’은 우리말에 대한 구조주의적 연구의 결정판으로 평가되는데, 경어법 체계를 ‘상대존대·주체존대·객체존대’라는 3항의 대립체계로 설명한 것이나 문법형태소인 ‘-오/우-’를 삽입모음으로 분석한 것 등은 국문법 설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결코 학문과 강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0년 한글학회 이사로 선임된 뒤 1970년부터 34년간 한글학회 회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민간 주도의 각종 언어문화사업을 펼치고 국어운동을 지식인과 일반인 사이에 확산하는 데 힘썼다. 한글전용론, 한글날 공휴일 폐지 반대운동, 국회의원 한글 명패 전달식,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 이름 선정…. 한글을 국민의 마음에 심는 운동이 일 때마다 그는 언제나 좌장의 자리에 있었다.



한글 전용을 둘러싸고 고 남광우(南廣祐) 박사와 수십 차례 논전을 벌였던 일화는 유명하다. 남 박사와 그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지기(知己)였지만, 한글전용을 주장한 그와 한자 혼용을 주장한 남 박사는 학회뿐 아니라 사회 활동에서도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국어학 공부를 결심,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외솔 최현배 선생 밑에서 국어학을 공부했지만 곧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됐다. 스승이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 이후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국어학을 독학했다. 1940년부터 2년간 폐침윤으로 요양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15세기 국어 문법을 공부했다. 광복과 동시에 고향인 김해에서 한글 강습을 연 그는 우리 말글의 계몽·보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부는 26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국민훈장 모란장(1984) 외솔상(1973) 성곡학술문화상(1986) 세종문화상(1990) 주시경 학술상(1993) 등을 받았다.



(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