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함께 사소한 문제로 밤새워 논쟁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야,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원숭이가 타자기를

두드리며 놀다가 우연히 옥스퍼드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고스란히 복사해낼 확률이야.

아니면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잔 속의 물이 떠돌다가

빗방울이 되어 네 머리 위로 떨어질 확률이든가!\"

물론 우스갯소리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는 일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마치 세상의 비밀은 다 알게 되었다는 듯이 얼굴에

잔뜩 여유 있는 웃음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우연히 교양용 과학책을 뒤적이다가 뒤통수가 찌릿해지는

글을 읽게 되었다.

바로 거기에는 소크라테스 독잔 속에 있던 물 이야기가

살짝 언급되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극히 소량이나마

문제의 독잔 속에 있던 물의 일부분이

우리의 폐를 들락거린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독잔 속의 물이 지구상에 골고루 퍼졌다는

가정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지금, 이라크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마신 물을 나도 마셨고, 내가 숨쉬었던

공기를 그들도 호흡하고 있다.

이라크 주민들이 흘린 눈물들이 벌써

내 몸에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 홍석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