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쏘가리 교수님

지금은 내 키를 훌쩍 넘어선 아들놈이 강철희 교수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대외적으로 공개된 별명이 아닌 아들놈이 강 교수님을 지칭할 때의 호칭이다.

아들놈이 초등학교 2학년일 무렵 강 교수님과 내가 속한 고교동문 모임인 “월봉회”에서 홍천강가의 팔봉산 일박이일 여행할 때 강 교수님의 성함을 모른 상태에서의 부자간 대화중에 아들놈이 “그 쏘가리 교수님 있잖아”하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단박에 누구인가가 연상되니, 적어도 인상착의에 착 달라붙은 별명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쏘가리”라? 

얼룩덜룩 거뭇하고, 유난히 검고 똥그란 눈에 부리부리하고 반짝이는 눈매

머리에서 꼬리에 이르는 도톰한 유선형의 묵직한 몸매

묵직하나 불현듯 치고 나가는 날렵함

산중의 지배자가 범이라면

흐르는 물 속의 호걸은 쏘가리가 아닐까?

쏘가리에 관한 이들 몇 가지 사실에 강 교수님을 대입해 보니 비록 어린애의

시선일망정 사실과 동떨어진 별명은 아닌듯하여 지금도 우리 부자간의

대화에선 강 교수님 대신에 쏘가리 교수님으로 불리 우고 있다.

쏘가리가 톡 쏘아 붙이듯 강 교수님의 톡톡 쏘아대는 성품이 또는 성질이 일품이자 두려움이랄까?  이 같은 강 교수님의 외모와 성격 탓에 교수님을 처음 대하는 후배들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웬지 망설임이 끼어들 수밖에 없음을 당신도 알고 계실 것이다.

몇해 동안 골프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나로서는 강 교수님이 속한 조에 다른 세 명의 동반자를 배정할 때 다른 조 조편성에 비해 숙고를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강 교수님의 성격을 잘 알지 못했던 동반자 후배가 라운딩 중에 따끔하게 쏘였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강 교수님의 쏘아 붙임의 종결편은 남도의 바닷가 망망대해 외로이 떠 있는 자그마한 섬, 죽도의 방파제 위에서 일어났다.   사실 누가 먼저 쏘았는지는 모르나, 강 교수님의 상대방은 다름 아닌 사모님이었다.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통영으로,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시간 반을 떠 내려와 당도한 죽도는 너무 아름답고 호젓했다. 

그 때 우리는 별 이불을 머리에 이고선 바다로 찔러든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고기들이 서울손님을 대접한다고 그랬던지 던지는 족족 잇감을 물고 나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낚아 올린 고기는 그 자리에서 대충 썰어 초장발라 막 소주랑 막 들이켰으니, 다들 떡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때, 산 중턱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방파제로 내려오신 형수님께서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서 강교수님께 한마디 하시자 바로 쏘아 대신다.  섬이 떠내려갈 지경의 큰 고함으로 “니는 왜 나한테 자꾸 그라노?”  나를 포함한 주위의 여러 후배들은 와중에 깜짝 놀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일정상 강 교수님은 이번 섬 여행을 도저히 소화해 낼 수가 없었음에도 당신이 무리를 해서 참석하셨다.  이튿날 새벽 5시경에 없는 배를 뭍으로부터 특별히 대절해서 통영으로, 그리고 통영에서 가까스로 시외버스에 올라타 사천공항으로, 서울에 당도해서는 허겁지겁 가까스로 예식장에 당도하여 천신만고 끝에 제자의 주례를 완수했노라 후일에 말씀을 주셨다.

강 교수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그리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후배로서 볼 때, 강 교수님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도 안 무섭다.  오히려 후배에 대해 잔정이 많고 마음씀이 깊어서 되레 못난 후배가 무안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급한 물쌀을 거칠게 받아내며 바위 틈새에서 평생 눈 한번 꿈쩍 않고 치열하게 응시하는

쏘가리의 위용과 기상이여!

쏘가리는 늙지 않는다.  늙은 쏘가리를 본 적이 있는가?  세월의 자양분으로 해해년년 몸집을 키워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