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 김상연 
| 제목 | 지나온 40년, 함께 갈 40년.. |
|---|---|
| 글쓴이 | 최준태(53) [ jatochoi@hotmail.com ] |
| 작성일 | 2017-10-25 |
|
덜컹 덜컹
80년대 유행했던 구성진 노래로 BGM 쫙 깔아주는 대절 버스 기사 양반의 세심한 배려로 콧노래 흥얼거리며,
꽉 막히는 토요일 서울 시내를 관통해
친구들을 태운 버스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30주년 때는 오랫만에 친구들 볼 생각에
설레임으로 잠도 설쳤었는데, 40주년에는 그렇지는 않네.."
상창이는 말은 그리해도 부산 친구들 볼 생각에
벌써 마음은 해운대 바닷가에 가 있다.
"당신도 같이 안갈래?" 엊저녁 물음에 아내는
어느 집 와이프가 같이 가는 지를 물어봐서 총무에게 확인해 보니,
다들 요즘 금슬이 션찮은지 귀표도, 상창이도, 믿었던 선수도 모두 전멸이다.
할 수 없이 혼자 나선 길이었으나,
내심 홀가분함에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출발과 동시에 벌써 마음도 가을 하늘이다.
"야, 니들 왜 아무도 동부인 안하냐?
따라나서는 걸 억지로 주저앉힌다고 돈 좀 깨졌다"
총무 대규가 목동 출발과 동시에 전멸 소식을 전해
홍일점 마나님 모시게 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규순이 얼굴도
홀가분+구사일생 미소가 짜르르 흐른다.
덜컹 덜컹 시내를 빠져 나오기까지 답답하게 막히던 고향길은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서자 드디어 큰 차 대절비 값을 한다.
꽉막혀 신음중인 승용차들을 보며 규연이는 환호를 지르고,
그래 이 기분 그래로 살려서 쭈~욱!
범찬, 지욱, 태옥, 종탁 주당(酒黨)들은 쏘맥으로 술판을 폈다.
주졸(酒卒) 또는 주유(酒幼) 계급인 나는
신선들의 놀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창밖을 본다.
꽉막힌 차선에 갇힌 차들은 덜컹 덜컹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우리 버스는 신나게 달린다, 시속 120킬로는 될 듯한데..
20대의 세월은 시속 20킬로, 40대에는 40킬로로 달린다고 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시속 60킬로의 세월을 살고 있는 거지.
전용차로를 달리는 이 버스처럼 신나게 쒼나게 달리는 세월.
덜컹거리며 좌충우돌, 가다 서다, 때론 왔던 길 되돌아 가기도 했던
시속 20킬로의 철없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싸르르 가슴을 관통한다.
회한인지 미련인지.
덜컹 덜컹
..
재잘 조잘
커다란 원탁 열서너 개가 놓인 식장은
이내 친구들의 환한 미소와 마나님들의 수줍음으로 가득 채워졌고,
해우, 영식, 광영, 효재 등 회장단의 수고와 노력으로 잘 준비되어
모두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 길고 긴 수다가 끝이 없다.
이 자리를 준비한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 되어 몇십 년 만에 신발 한 짝씩을 벗어들고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는 어깨동무 친구로 다시 만났다
주름잡힌 얼굴 가득 담긴 웃음은 맑고 빛났다.
마흔을 넘기면서 남자는 여성호르몬 증가로 인해
말이 점점 많아진다는데, 환갑을 맞은 우리 친구들도
기력이 이제 온통 입으로 쏠렸는지,
재잘조잘 수다로 시작한 행사는 시끌벅적 분위기를 타다가
왁자지끌 마침내 봇물이 터져,
꼭 도인같은 풍채와 그에 어울리는 선곡을 했던 태계,
성악가 했으면 좋을 뻔한 미성의 종간,
마이크 점령군 사령관 영수,
'오빠라고 불러다오' 아직도 화류계 샛별 대규 등등
가수뺨치는 친구들의 이어진 열창으로
저녁 늦게까지 노래방에서 활활 타올랐고,
이 순례길은 마지막 꼼장어집에서
문 닫는다고 거의 쫓겨나고서야 새벽 두시를 넘겨 끝이 났다.
영감탱이들 아직 솨라있네~ 그렇게 오랜 시간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해도
아직도 재잘 조잘..
..
털렁 털렁
아침에 눈을 뜨기가 너무 힘들다.. 어젯밤 너무 과음한 탓이다, 맥주를 두잔이나 마시다니.
녹천탕. 그래, 부산 왔으면 여기는 한번 가줘야지.
어릴 적 명절 앞두고 아버지 손에 끌려 전차를 타고 종점까지 와서 여기 녹천탕에를 오곤 했다.
목욕하고 먹는 우뭇가사리 동동 뜬 콩국물과
즉석빵의 달콤함이 아직 기억에 남아
지난 50년간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변하였지만
이 곳 온천장은 내겐 아직 즉석빵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목욕탕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래 역시 온천은 녹천탕!
'아이씨 여게 수군이 한개도 엄네예'
어떤 이가 직원에게 수건을 부탁하는 소리는
감히 어디서도 듣지 못하는 특급 오리지날 부산말이다.
어떤 모임에서 다음 모임 날짜를 잡는데 목소리 큰 총무가 '육월 몇일' 하는데
오랫동안 '유월'에 익숙한 서울생활에서
그 부산 출신 총무의 '육월'은 참 신선하고 정겨웠다.
수군을 가져다 준 그 직원은 씨레기를 봉다리에 여어서 에삐리며
아따 오늘 나만 사람들 데기 많네..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류는 단연 60대-70대이며,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운동을 하느라 바쁘다.
좌우 다리를 뻗어서 스트레칭 하는 이,
탕안에서 뱅뱅 돌며 조깅하는 이,
앞으로 천천히 걷는 이,
뒤로 빨리 걷는 이.
제각기 개발한 방식으로 이런 저런 자세를 취하며 체력단련에 힘쓰고 있으나 분명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털렁 털렁
털렁 털렁
나는 발가벗고 목욕탕 안에서 무슨 운동이랍시고
종소리내며 왔다갔다 하는거 하지 않았으면 한다.
탕안에 느긋이 앉아 나처럼 전날의 숙취나 시원하게 풀면 될 일이다.
종소리 나지 않게
털렁 털렁
.. 깜빡 깜빡 헤어짐이 아쉬운 친구들은 밤새 계속된 소주와 여흥에 모두 살아 남아
속풀이에 최고인 복국 한 그릇을 나누기 위해 다시 뭉쳤다.
서울 촌넘들을 위해 제일 비싸고 귀한 까치 생복을 주문한 편회장은 음식이 늦어지자 "아지매 여기 술부터 주소" 하는데
한두병 해장술은 셀 수도 없이 계속되어
먼길 출발하는 친구들 귓볼은 아침부터 단풍이 든다.
버스는 출발하고 선수는 술기운에 잠이 들었으나 "덕재는 내가 책임진다, 오늘 저녁에 내가 완전히 보내뿐다"
어제 내려오는 버스에서의 호기롭던 지욱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안동역에서"로 출발한 덕재의 리사이틀은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속에"를 거쳐
마침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고 나온 지욱이와
완벽한 투톱체제를 이뤄 기어이 잠든 선수를 깨워버렸다.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속에 꿈뻑 꿈뻑 선수의 눈은 촛점이 없다.
'헌덜리넌' 차창 너머로 (우린 왜 '흔들리는'이 안될까?) 혈관까지 익숙한 바닷내음이 점점 옅어지고
맥주 한모금의 취기에 스르르 눈을 감으면,
나는 듣는다, 어둑해질 때까지 보이지도 않는 축구공을 따라다니며
젊음과 열정으로 그 넓디 넓은 운동장을 넘치게 채웠던
그대들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나는 본다, 이른 아침 서울 친구들을 배웅하기 위해 어묵에 돈까스에 김밥을 바리바리 싸들고
잘 가오, 잘 있오 쉬이 끝나지 않던 인사로 손 흔들어 주던
그대들의 눈가에 맺힌 아쉬움과 따뜻함을.
파도소리도 한번 듣지 못한 채
부산을 떠나왔다.
|
부산은 내게 무엇인가?
규순의 부산은 '이방인'이라고 했다.
고향에서 이제 이방인임을 느끼게 되어 버린 타향살이의 피로가 묻어 있다.
갓 졸업을 하고 치열한 삶을 시작하던 미생의 그 때
부산은 '그저 부산'이었다.
여러 도시 중 하나, 내가 나고 자란 그 곳 - 부산.
남들 다 하는거 나도 해야지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내 부모님의 은공에 조금씩 철이 들 무렵
부산은 '어머니'요 '아버지'였다.
언제나 뒤돌아 보며 안타까움과 죄송스러움에
돌아오는 발길이 항상 무겁던 그 곳 - 부산.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 젊고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이미 눈치가 보이는,
요강을 비워도 금방 또 비우고 싶고
털어도 털어도 아이쿠 누수사고로
바지 앞섶 더럽히는 나이가 되니,
부산은 이제 '친구'가 됐다.
보고 싶은 내 친구들의 숨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있는 그 곳 - 부산.
효재가 구성지게 불러 준 노랫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그리워 하는 나이들이다.
'다시 못 올 것'은 맞지만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 싶다.
손주 돐 행사로 늦게 비행기를 탄 덕재는
앞으로 많이 만들어 가자고 했다.
그래,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지.
지금처럼 늘 아쉬워하고
앞으로도 늘 그리워하며
그저 따뜻한 술 한잔 나누면서
지나온 40년 함께 만들어 왔듯이
가야할 40년 함께 만들어 가면 되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Desperado 라는 곡은
이렇게 그 절절한 노랫말을 끝맺는다.
It may be raining
But there’s a rainbow above
You’d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Before it’s too late
너무 늦기 전에
더 자주 생각하고 더 자주 보며
생각하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연습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늘 생각 속에 있는
부산은 '친구'다.
..
40주년 행사도
짧고 뭉툭한 후기도 끝났다.
그러나 그대들과의 길고 달콤한 여정은
변함없이 쭈~욱 계속될 것이다.
그대들과
함께 늙어가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최준태]
